282. 하는 데까지 해보기

by 장용범

처음 수영을 배울 때 강사로부터 몸의 힘을 빼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하지만 머리로는 알겠는데 물에만 들어가면 자연스레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힘을 빼는 것이 가능했는데 물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았을 때였다. 육지에 사는 인간에게 물은 아무래도 익숙한 상황은 아니다. 물이 두렵지 않았을 시기가 언제였는지 되짚어 보면 육지와 다른 물속의 상황을 내가 순순히 받아들였을 때였던 것 같다. 달리 말하면 내가 육지에 적응된 몸의 움직임을 물에서도 고집하면 몸에 힘이 들어가고 가라앉으며 얼굴은 물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해 오히려 물을 먹는 경우가 생겼다.


중년의 나이가 되면서 좋아진 게 있다. 새로이 무엇을 하더라도 힘이 덜 들어간다는 것이다. 반드시 해낸다는 다짐 같은 것도 없고 끌리면 시작해 보고 재미있으면 계속해 보는 것으로 대강 얼개를 그린다. 다른 중년들도 이런지는 모르겠지만 이것도 인생 경험의 산물인 것 같다. 어떤 일이 꼭 다짐하고 노력하고 애쓴다고 되는 게 아니란 걸 깨우친 때문이다. 노자의 도덕경에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도 있듯이 물처럼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 일을 진행하는 최고의 방법 같다. ‘인샬라’라는 말은 이슬람 사람들의 상투적인 인사말이다. 의미는 ‘신의 뜻대로’인데 이게 서양적 가치와는 문화적 충돌을 일으키기도 하나 보다. 약속을 정하는데 언제 어디서 보자고 하면 ‘그러자’가 아니라 ‘인샬라’라고 한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때도 언제까지 반납하라고 하면 ‘인샬라’라고 한다. 뭔가 정확해야 하는 순간인데 그것을 신의 뜻대로 하면 못 지킬 수도 있다는 의미 아닌가. 그럴 바엔 약속을 왜 하는가라는 게 서양식 사고라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라는 게 이슬람식 사고인 것 같다. ‘인샬라’라는 말에는 내가 약속을 지키고 싶지만 전혀 예상 못한 일이 벌어지면 못 지키는 것 아니겠냐라는 뉘앙스가 있는 말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나도 어떤 일을 대함에 ‘인샬라’ 방식을 받아들이고 있다. 사람이 그래서야 쓰나 매사에 정확해야지라고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직접 적용해 보니 장점들이 적지 않다. 잘하겠다는 생각이 없으니 일단 시작이 용이하다. 그리고 일이란 게 해 보면 알지만 처음 시작이 어렵지 하다 보면 그럭저럭 늘게 되고 되어가게 마련이다.


그리고 남에게 잘 보이려고 하지 않는다. 늦게나마 알게 된 사실이지만 세상은 내가 잘 보이고 싶다고 잘 봐주는 게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더 이상 남으로부터 인정받는 것에 껄떡거리지 않기로 했는데 이게 마음이 그리 편할 수가 없다. 나는 당신에게 바라는 바가 없으니 당신은 나에게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할 수가 없다는 논리이다. 인정의 욕구는 인간에게 굉장히 강한 욕구인데 여기에서 좀 벗어나니 타인의 시선에서 많이 자유로워지고 있다.


“반드시, 꼭”이라는 말을 쓰지 않기로 한다. 인간이 하는 일에 “반드시, 꼭”이라는 말을 과연 쓸 수 있을까. 끌리면 하고 재미있으면 계속하고 아니면 마는 것으로 정하니 몸과 마음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자연스러운 상태가 된다. 그래서 무언가를 할 때 억지로 열심히 하지 않는 걸로 한다. 꼭 그리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세상에 ‘반드시, 꼭’ 해야 할 일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도 싶다. 이게 다 나이 들면서 생긴 여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요즘 나의 마음이 그렇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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