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3. 술이나 한 잔 해라

by 장용범

본사에 있던 그가 공석이던 강릉의 지점장으로 지원한 것은 의외였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무슨 이유가 있겠거니 했지만 스스로 밝히지는 않았다. 휴일 오전 자전거를 타고 한강변의 가을바람을 만끽하다 문득 지점장 생활 3개월째 접어든 그의 근황이 궁금해졌다. 마침 주말을 맞아 집에 왔을 그에게 식사나 하자며 연락을 취했다. 오랜만에 본 반가움도 잠시 그의 모습은 많이 지쳐 보였다. 본사에만 근무했고 현장 경험이 없던 그였기에 지금의 어려움이 가히 짐작이 되었다. 더구나 코로나 시국에 이미 기울어진 지점을 맡아 운영하는 일이 녹녹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애초의 자신감이 많이 꺾인 상태였다. 본사에 서운함을 표했다. 현장의 상황도 모르면서 탁상공론만 한다는 내용이었다. 불과 2-3개월 전 그가 근무했던 곳에 대한 그의 평가였다. 경험해 보지 않고 무언가를 논한다는 게 얼마나 뜬구름 잡는 얘기인지 그 스스로도 느끼는 것 같다. 그는 뜬금없이 지점장을 지원한 이유를 밝혔다. 아래 직원과의 갈등이 문제였다. 얼마나 갈등이 심했으면 서울에 사는 그가 강릉까지 지원할 정도였을까 싶다. 그냥 안 보고 말겠다는 심사였나 보다. 하지만 인간사 갈등은 피한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다. 새로이 간 그곳에서 또 다른 관계의 어려움을 겪는 듯 보였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그는 혼자 하는 일은 정말 잘하는데 리더가 되어 사람들을 이끌고 하는 일이 힘들어 보였다. 자신이 아무리 해줘도 고마움을 모르고 돌아오는 게 없다는 말을 들으니 그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짐작이 갔다.


우리가 하는 큰 착각 가운데 하나가 하는 만큼 돌아올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다. 특히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하는 것만큼 돌아온다는 믿음은 종종 우리를 좌절케 한다. 내가 겪어 본 인간관계는 수학공식처럼 그리 딱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어디 인간관계만 그럴까. 우리가 공들여하는 일들도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오리란 보장은 없다. 가능성이 좀 높다는 정도이지. 보통 개인적으로 탁월한 사람들은 혼자서 하는 일을 잘하는 경우가 많다. 업무의 성과도 남다르고 사내 경쟁 같은 데서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난관이 다가오는데 그 탁월함을 인정받아 승진을 할 때이다. 이제부터 그의 탁월함 은 팔로워들과 함께 만들어 내는 팀이나 부서의 성과로 평가받게 된다. 차라리 혼자서 하는 일이라면 밤을 새워라도 하겠는데 마음이 제각각인 사람들을 아우르며 하는 일은 쉬이 지쳐버리게 마련이다. 더구나 최근에는 갑질이니 뭐니 해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그러니 자연스레 일보다 관계가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오게 된다. 그런데 생각해 볼 것은 자신의 일에는 인간 관계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업무상 일이 50%라면 인간관계가 50%가 되어 자신의 일은 100%가 되는 것이다. 맡겨진 업무만 하겠다는 것은 일의 50%만 하겠다는 말과 같다. 지점장으로 자원하여 좋은 성과를 내보려 했으나 혼자 일할 때보다 더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니 안쓰러운 마음마저 들었다. ‘세상이 내 맘대로만 돌아간다면 얼마나 좋겠냐. 자, 술이나 한 잔 받아라’ 내가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격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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