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에 다녀오겠다는 아내의 표정이 다소 어두웠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장모님이 요양병원에서 요양원으로 옮기시는데 이번 기회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코로나로 면회가 안 되는 상황에서 짧은 시간이지만 장모님을 뵙고 오겠다는 말이었다. 출근길 공항철도가 연결되는 역에다 아내를 내려다 주고 오는데 장모님에 대한 여러 기억들이 스친다. 매년 6월이면 서울에 오셔서는 현충원에서 막내 오빠에 대한 기억을 더듬곤 하셨는데 어느 여름날 아내와 셋이서 야외에서 기울였던 막걸리에 대한 기억을 자주 말씀하셨다. 아내는 이를 두고 참 값싸게 장모님 마음 얻었다고 핀잔을 주었지만 사실상 나는 장모님께 신세 진 기억밖에 없는 것 같다. 신혼 초에는 처가 근처에 살다 보니 막내딸의 육아를 도와주셨고 혼자서 텃밭을 가꾸어 철마다 먹거리를 전해 주시기도 했다. 맞벌이하는 큰 아들 내외와 살며 살림과 손자들을 키워내신 걸 보면 나의 장모님은 평생을 일과 함께 사셨던 분 같다. 아무리 쉬시라고 해도 일평생 스며든 부지런함은 마음 가는 만큼 몸이 따르지 못해 보는 이들을 불안하게도 하셨다. 그런 장모님이 이제 요양원에 들어가신다. 노인들의 만성질환이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 간다고 호전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먹고사는 일에 바쁜 자식들에게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기도 하다. 국가에서 일부 보조를 한다지만 그럼에도 매월 들어가는 비용은 고스란히 자식들의 부담이 되고 만다.
노인들의 노화 속도는 어느 지점을 지나면 급속히 진행되는 것 같다. 분명 괜찮아 보였는데 몇 달 사이에 감기나 낙상으로 쇠약해진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갑자기 엉뚱한 행동으로 치매끼를 나타내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보는 자식들의 마음은 복잡하다. 정서적으로는 부모님과의 좋은 추억을 떠 올리며 그 괴리에 힘들어 할 수도 있고, 현실적으로는 매월 지급해야 할 부담을 고민하기도 한다.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 들어가는 노인들의 마음은 또 어떠할까. 개인들로 보자면 일제강점기나 한국전쟁 전후에 태어나 죽을 고생을 하며 이 나라를 선진국의 반열에 올려놓은 주역들이다. 모두들 예사롭지 않은 내공을 지녔지만 이제는 거동 불편하고 정신이 혼미한 노인들이 되고 말았다. 누구나 노인이 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어쩐지 나는 아닐 것 같은 게 노화인 것 같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는 말들을 하지만 내가 아는 분들의 노화와 그분들이 요양원이나 병원에 있는 모습을 보면 새삼 인생의 허망함을 느낀다. 내 어머님이 나의 딸에게 건넨 한 마디는 이러하다. “인생, 금방 늙는다.” 어쩌면 내 어머님은 20대 손녀에게서 당신의 그 시절을 보셨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