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의 지하철 노선은 상당히 복잡하다. 정말 저 끝까지 선로가 놓여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시간 많은 노인들은 지하철을 타고 온천이 있는 온양까지 가서는 목욕하고 하루를 보내고 온다는 얘기도 있어 각 노선의 끝까지 하나씩 답사해 보는 것도 재미있어 보였다. 이번 추석 연휴는 너무도 여유롭게 보내는 중이다. 지난주 고향에 미리 다녀온 터라 5일 연휴를 고스란히 휴가처럼 쓰고 있다. 그래서 평소 생각했던 지하철 노선 끝 여행을 하나 시도하기로 했다. 이름하여 경기도 여주까지 지하철 타고 가기. 아내에게 함께 가자고 하니 두 시간 가까이 지하철을 타야 한다는 말에 질색을 한다. 결국 혼자서 짐을 꾸렸다. 짐도 단출한데 책 한 권에 노트 한 권이 전부다.
집 앞에서 지하철 3호선을 타고 양재까지 갔다. 한 때 회사를 출범시킬 때 TF팀에 합류해 매일 다니던 곳이었다. 당시 TF팀장이 은퇴 후 계약직으로 다시 입사해 내 부서에 근무하고 있으니 사람 일은 정말 모를 일이다. 양재에서는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신분당선으로 환승을 했다. 나는 최근이라 여겨지는데 이것도 찾아보니 10년이 넘은 지하철 노선이다. 벌써 세월이 그렇게 됐나 싶다. 당시 양재에 출근할 때 신설 노선이었는데 그 이미지가 나에겐 정지된 상태로 남아 있었나 보다. 하여튼 인간의 기억이란 믿을 게 못 된다. 신분당선은 역간의 간격이 처음에는 짧게 정차하더니 판교역으로 갈 때는 한참을 달려갔다. 이상해서 지도를 찾아보니 이해가 되는데 열차는 청계산 밑을 통과하고 있었다. 마침내 판교에 도착해선 다시 경강선으로 환승을 한다. 경강선은 코레일에서 운영하는 노선이었다. KTX 탈 때 자주 듣던 ‘달려라 코레일~’이라는 음악이 귀에 익다. 어떤 것에 동일한 음악을 반복해서 들려주는 것도 사람을 조건 반사화 시키는 효과가 있다.
이제부턴 지상철로 계속 이어졌다. 이천을 지나고 여주의 세종대왕릉 역을 지나 마지막 여주역에 도착했다. 일단 시청 방면 버스에 올라탔다. 승객이 없어 기사님은 나만 태우고 여주역을 벗어난다. 여주역으로 인해 이곳도 수도권에 편입된 때문일까. 군데군데 아파트 건설 현장이 눈에 띈다. 도시의 첫인상이 다소 기형적이다. 낮고 낡은 구옥들과 새로이 올라가는 아파트들의 스카이라인이 그리 조화롭지는 못했다. 시청 정류장에 내려 근처 시장으로 갔다. 시장 이름이 여주 한글 시장인데 세종대왕릉이 있어서인지 여주의 컨셉은 한글과 세종대왕임을 알 수 있었다. 도시 입구에도 세종대왕의 동상이 놓여 있는데 광화문의 동상에 비해 작고 초라하며 얼굴도 영 딴판이다. 사진이라도 남은 근대의 인물들에 비해 이순신 장군이나 세종대왕의 모습은 그저 상상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같은 인물에 두 얼굴의 동상을 대하는 여행객의 눈에는 광화문의 세종대왕이 진짜 같고 여주에 있는 것이 가짜 같았다. 진짜와 가짜의 구분도 이렇듯 익숙함에 따른 눈속임인가 싶다.
때는 점심이라 간단한 식사를 하기로 했다. 맛집을 찾으려다 말았다. 일부러 맛집 찾아 헤매는 것도 귀찮았지만 지나다 끌리는 것을 먹는 게 더 식욕 본능에 충실할 것 같아서다. 베트남 사람이 운영하는 쌀국수 간판이 눈에 띈다. 안으로 들어가니 일군의 베트남 아낙들 여럿이 수다를 떨고 있다. 젊고 아직 아이들이 어린 걸로 보아 이 나라에 온 지 얼마 안 된 것 같았다. 식당이 그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었다. 쌀국수인 포와 군만두 같은 짜조를 주문했다. 하지만 양이 생각보다 많아 짜조는 포장을 하고 만다. 배도 채웠으니 이제 시내를 둘러본다. 시청 뒤의 남한강변이 보고 싶었다. 기대가 너무 큰 탓이었을까. 강변의 풍경은 너무 단조로웠다. 서울의 한강뷰라는 곳은 이런저런 프리미엄이 있는데 여주의 강변에는 오래된 빌라들만 보였다. 다만 강 건너에는 높은 아파트와 수상레저 시설도 있는 걸로 보아 이곳도 강을 중심으로 양쪽의 삶이 나뉘는가 싶다. 따가운 가을볕 아래 걷자니 땀도 나고 이내 지쳤다. 마침 보이는 카페에 들어섰는데 중년의 남자들이 맥주를 마시며 떠들고 있다. 카페 주인은 그들과 함께 앉아 있다 들어선 나를 반갑게 맞는다. 그냥 나올까 하다 경치는 좋아 보여 잠시 쉬다 가기로 한다. 좀 조용히 있고 싶어 들어온 곳인데 자리의 기득권을 가진 그들의 소음이 거슬렸다. 커피만 마시고는 다음 행선지를 생각하다 짧은 시간이지만 여주 도심은 거의 느낀 것 같아 그냥 돌아가기로 하고 일어섰다.
지하철 노선의 끝을 찾아가는 한 나절의 여주 여행은 그리 끝이 났다. 남한강변의 여주에 대한 환상이 컸던 때문일까. 기대만큼 충족된 여행은 아니었다. 어쩌면 내가 못 본 곳에 더 근사한 풍경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여주 여행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여기저기 올라가는 아파트 공사 현장과 아파트 단지들 그리고 아직 이런 변화가 낯선 더 많은 낡은 집들과 공터가 조화롭지 못한 곳이란 느낌이었다. 어쩌면 이곳도 좀 더 시간이 지나면 고층 아파트들로 도시 전체가 채워질지도 모르겠지만 아직은 도시도 아니고 농촌도 아닌 엉거주춤한 느낌이다. 수상스키를 타고 있는 모습이 지금은 어색해 보이지만 도시는 계속 성장하고 있으니 앞으로 저런 모습이 좀 더 익숙한 도시가 될지도 모르겠다.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한참을 졸며 왔던 하루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