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 재미있으니 행복하다

by 장용범

생일날 딸아이에게서 정말 생각도 못한 선물을 받았다. 레고 조립세트인데 930피스라는 만만치 않은 조각들로 이루어진 자동차 모형 만들기였다. 어릴 적에도 비행기나 탱크 같은 프라 모델 만들기를 즐겨했지만 그땐 참 조잡했던 것 같다. 장난감 조립세트를 들고 좋아 어쩔 줄 모르는 나를 아내는 의외라는 듯 반응했지만 나로서는 근래 받았던 어떤 선물보다도 맘에 드는 아이템이었다. 어디서 조립할까 하다 레고 박스를 들고 휴일이라 조용할 것 같은 회사에 가기로 했다. 집에서 가깝기도 하거니와 널찍한 회의 테이블만큼 좋은 환경도 없을 것 같아서다. 들어갈 때 아예 편의점 도시락을 하나 사 들고 갔는데 마치 수행승이 토굴에 도 닦으러 들어가는 것 같았다. 피스 하나하나를 보면 어디에도 자동차 모양을 찾을 수 없지만 조금씩 진척이 될수록 형태가 조금씩 드러났다. 그 조립하는 과정에 시간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이래서 사람들이 서서히 레고 마니아가 되어 가나 싶었다. 대강 세 시간 정도면 만들지 않을까 했는데 거의 반나절이 지났는데도 1/3 정도만 완성이 되었다.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일단 거기서 중단하고 가족들과 저녁시간을 가지러 집으로 왔다.


인간에게 재미는 몰입을 가져오는 행위이다. 또한 재미의 대상은 사람마다 다른데 같은 행위라도 누군가에게 재미난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별 재미가 없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재미는 각자에게 맞는 것을 스스로 찾는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재미의 공통된 속성 정도는 있다. 세바시에 소개된 김선진 교수에 의하면 사람들은 보통 무언가를 가지고, 키우고, 배우고, 만들고, 만나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낀다고 한다. 사람이 행복하다고 해서 재미도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재미있는 사람은 여하튼 행복하게 되어 있다. 다만 지금도 재미있고 나중에도 재미있는 것을 찾아야지 마약이나 알코올처럼 뒤에 후유증이 심한 것은 진정한 재미라 할 수 없다. 그걸 무슨 재미로 하나라는 말들을 하지만 재미는 본인이 느끼는 거다. 그러기에 재미는 무척 주관적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추석 연휴는 정말 재미나고 풍요롭게 보내는 중이다. 매일 글을 써서 블로그에 올리고 짧은 여행도 다녀왔으며 레고 박스를 들고 만드는 재미에도 푹 빠졌다. 게다가 저녁이면 가족들과 함께 작은 파티 분위기를 내고 있으니 이래저래 최고의 연휴인 셈이다.


한 사람의 생을 통틀어 재미있고 행복하게 살았다면 그는 얼마를 가졌든 어떤 위치에 올랐든 인생을 잘 살았다 할 것이다. 행복이라는 것은 어떤 특정한 감정이 아니라 여러 가지 긍정적인 느낌들이 어우러진 복합적인 의미라고 한다. 그런 면에서 재미를 찾는 행위는 행복하기 위한 구체적 처방이라 해도 될 것 같다. “타인의 시선과 기준에 맞추는 삶이 아니라 나만의 재미를 발견하는 것이 행복이다”는 김선진 교수의 말에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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