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3. 시절 미인, 시절 영웅

by 장용범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 못 노나니,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 한 번쯤은 들어 봄직한 옛 노래 가사이다. 꽃은 열흘 정도 붉고 떨어질 것이며, 보름달도 이내 기우는 것처럼 우리 인생도 젊어서나 놀지 늙어서는 놀지도 못 한다는 내용이다. 그런가 하면 ‘낙양성 십리 하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영웅호걸이 그 누구냐, 절세가인이 그 누구냐’라는 성주풀이도 있다. 실제로 중국 낙양 인근에는 북망산이라는 곳이 있고, 그곳에는 황제들의 무덤을 포함 옛사람들의 무덤이 많은 세계적인 공동묘지라고 한다.


어제 딸들이 선물한 레고를 조립하다 내 아버님을 떠올렸다. 호기심이 많으셔서 평생을 이곳저곳 다니길 좋아하셨고 웬만한 건 직접 만들고 고치기를 즐기시던 분이다. 그런데 지난주 뵌 아버님은 하루 종일 TV를 보거나 낮잠으로 소일하시는 모습이 너무도 무기력해 보여 짠한 마음이 들었다. 레고는 나도 처음 조립하지만 이게 나름 공간적인 머리도 써야 하고 손 조작도 꽤나 섬세해야 하기에 아버님의 성향상 좋아하실 것 같았다. 다만 연세가 예전과 달라 괜히 스트레스받으시려 나는 염려도 있었지만 일단 하나 사 드리기로 하고 주문을 했다. 그 사실을 아내에게 말했더니 아버님께 괜한 선물 했다며 타박을 한다.


인간의 노화는 누구도 거스를 수 없다. 서울에 떨어져 지내며 가끔씩 부모님을 뵙지만 뵐 때마다 이전보다 늙으셨다는 느낌이 든다. 늙지 않는 것이 축복인지는 모르겠으나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면서 성장을 하고 성장의 끝은 노화로 이어져 결국 죽음으로 끝난다. 가끔 예전에 인기 있던 여성 연예인들을 매체에서 볼 때가 있는데 노화로 많이 달라진 모습들이 생경하게 다가온다. 그런데 그들도 두 부류가 있는 것 같다. 노화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 주름을 그대로 간직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보톡스를 맞거나 주름 제거술을 했는지 보기 민망할 정도로 팽팽한 얼굴을 가진 이도 있다. 그들에 대한 옛 향수도 있지만 꼭 궁금해지는 것이 지금 저 사람 나이가 어떻게 되지라는 것이다. 그리고 너무도 자연스레 스마트 폰을 꺼내어 그 이름을 검색해 본다. 황신혜 59세, 김희선 45세, 김완선 53세 등등. 세월은 저들에게도 비껴가지 않기에 공평하다는 생각도 있지만 스스로는 자신들의 늙어 가는 모습이 많이 아쉬울 것 같다. 한 때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던 스타들이었으니 오죽할까 싶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굳이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20대는 20대의 삶을 살고 50대는 50대의 삶을 사는 게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노화가 더 진행되어 60대, 70대의 삶이 되었을 때는 젊음을 향수할 게 아니라 처음 맞이하는 노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 면에서 올해 62세인 원미경이라는 배우가 나온 ‘낫 플레이드’라는 드라마는 내용 보다도 할머니를 연기하는 그녀에게 눈길이 더 갔다. 그녀는 내가 고등학생 때 처음으로 본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의 여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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