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7. 코드블루, 코드블루

by 장용범

“코드블루, 코드블루, 암병동 9층”
한밤 중 안내방송에 잠을 깼다. 여기는 세브란스 병원 17층 입원실이다. 잠결에 들어 분명하진 않지만 대강 이렇게 들은 것 같다. 담석증의 담낭을 제거하기로 결정하고 수술일 포함 2박 3일간의 입원 중에 수시로 들려오던 것이 코드블루라는 안내 방송이었다. 대체 코드블루가 뭐지? 뭔가 긴급상황인 것 같은데 그에 비해 방송의 목소리는 너무도 무미건조하고 차분하다. 모르면 네이버나 구글신을 찾게 된다. 코드블루를 찾아보니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환자가 발생한 상황이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병원 안의 어떤 사람이 지금 심장이 멎은 상태이고 그 병동에 있는 의료진은 누구든 가서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라는 지령과도 같은 방송이었다. 그 뜻을 알게 되니 새삼 숙연해진다. 나는 그 방송을 하루 중 3-4번은 들은 것 같다. 심폐소생술로 누군가는 살았겠지만 병원이라는 특성상 대부분은 사망하지 않았을까 한다. 그 긴급방송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본다. 정말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멘트이다. 지금 누군가 심장마비가 일어났다는 것과 그 위치를 알려주는 방송이다. 그런데 그 방송의 목소리가 어쩐지 인상적이다. 감정이라고는 전혀 섞이지 않은 영화에서나 들었던 인공지능 목소리 같았다. 어쩌면 정말 컴퓨터 음성 인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저 방송은 외래로 그 병원에 갔을 때도 몇 번이나 들었던 소리였다. “코드블루, 코드블루” 그때는 의료진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안내방송 정도로 들었는데 그것이 누군가의 심장이 멎었음을 알리는 방송일 줄은 정말 몰랐다. 더구나 코드블루라는 방송을 들으며 한 곳에선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고 병원의 로비에선 북적이는 사람들의 일상이 이루어지는 것이 묘하게 대조적으로 다가왔다.

입원 다음날 수술 회차가 첫 회로 잡혔나 보다. 아내가 따라나서는데 내 침대를 끌고 가던 남자 간호사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멈추더니 코로나 때문에 보호자는 갈 수 없고 여기서 작별하셔야 한다고 했다. 왜 하필 ‘작별’이라고 했을까. 그 순간 화장장에 시신이 들어가기 전 유족들은 여기서 작별하셔야 한다던 장면과 묘하게 겹쳐졌다. 5층 수술실에 들어가니 그 시간대에 수술받을 사람들의 침대가 나란히 줄 세워졌다. 족히 20명 정도 되는 것 같다. 어떤 젊은 처자는 곰 인형을 꼭 안고서 침대에 실려왔다. 주변을 둘러보니 천장에는 성경의 한 구절이 적혀 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을지니라”. 간호사가 다가와 자기는 마취과 소속이라며 나의 신원과 어떤 수술을 받는지 재차 확인했다. 여기서 꼬여 버리면 전혀 엉뚱한 수술을 받을 수도 있겠구나 싶다. 옆에서는 수술 환자가 팬티를 입고 왔나 보다. 여자 간호사의 팬티 벗어야 한다는 말에 노인이 난감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에 남자 간호사들이 도와주는 듯하다. 수술대 위에 이내 벗겨진 채로 놓일 초라한 몸뚱이인데 팬티 한 장에 집착하는 노인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났다. 수술복은 그냥 단추 달린 거적때기 같았다. 그 안에 벌거벗은 몸뚱이 하나가 있다. 나의 침대가 수술대 근처로 끌려가고 내 몸은 수술대 위로 옮겨졌다. 폭이 딱 내 몸 사이즈인데 오른팔은 90도로 펼쳐져 대위에 놓이지만 왼팔은 차려 자세로 침대에 고정을 시켰다. 지금 이 순간 나는 하나의 바코드가 부여되어 처리되는 고깃덩어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이어 수술복 입은 몇몇 사람들이 나를 내려다보며 신원을 한 번 더 확인하고는 자기들끼리 뭐라고 하더니 나는 이내 블랙아웃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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