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4. 조금씩 나아갈 뿐이다.

by 장용범

수년 전 수영을 처음 배울 때의 일이다. 물에만 들어가면 온몸에 힘이 들어가 버둥대다 물 먹는 일이 잦았다. 그렇게 별 진전 없이 수영을 배우던 중 하루는 너무 버둥대다 힘이 빠져 ‘에라, 될 대로 돼라’는 심정으로 물에 그냥 드러누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몸이 물에 뜨는 것이다. 마치 물이 내 몸을 받쳐주는 것 같았다. 그제야 힘을 빼는 상태를 몸이 기억하게 되었다. 물에다 몸을 맡기듯이 하고 물과 내가 주고받는 자연스러운 소통을 통해 몸이 앞으로 나간다는 것을 알게 한 값진 경험이었다. 지금도 그때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수영을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제는 수영장에서 물과 어떻게 놀아야 하는지는 조금 알게 되었다.


불교에서는 삶을 괴로움이라고 정의한다. 싯다르타는 그 괴로움의 원인을 깊이 파고든 분이셨다. 인간은 왜 괴로운가? 그렇다고 괴롭지 않다는 것이 곧 즐거움(락)은 아니다. 불교는 기본적으로 삶을 괴롭지 않게 사는 법을 추구하지 즐거움(락)을 추구하는 종교는 아니다. 불교에서는 괴로움(고)과 즐거움(락)은 동전의 양면처럼 늘 함께 하기에 즐거움(락)을 추구하면 괴로움(고)은 함께 온다는 입장이다. 불교의 가르침은 고집멸도 한 마디로 압축될 수 있다.

*고 : 인간은 괴롭다(고). 왜 괴로운가?

*집 : 탐진치에 대한 집착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

*멸 : 그 집착에서 벗어나면..

*도 : 영원한 자유(해탈)와 행복(열반)을 얻게 된다.


그런데 탐진치가 대체 뭐길래 이리 집착을 하게 되는 것인가? 탐은 욕망, 욕구, 탐욕이다. 그런데 인간이 이것을 내려놓기란 거의 불가능한 것 같다. 아니 이게 없다면 삶의 에너지도 사라지는 게 아닐까 싶다. 이에 대해 법륜 스님은 욕망은 없어지는 대상이 아니라며 다만 너무 여기에 매여 살지는 말라고 하신다. 한 끼의 적당한 식사를 하면 되었지 맛있는 것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거나 과음 과식으로 건강에 적신호가 켜질 정도라면 문제가 있다. 의식주를 간소하게 하는 삶의 자세를 가지라는 의미이다. 다음은 화를 의미하는 진이다. 진은 개인의 성격, 성질을 바탕으로 하는데 그만큼 오랜 기간 형성된 삶의 습관이기에 쉽게 변하지 않는 속성이 있다. 주로 언제 화가 치밀어 오르는가? 내 성질대로 되지 않을 때이다. 성질, 성격이라 쉽게 바뀔 수는 없겠지만 여기에 너무 매이지 않을 일이다. 욕망과 성질은 마음의 작용이다. 이에 대해 생각의 작용인 어리석음(치)이 있다. 옳다 그르다, 맞다 틀리다 등의 사리분별이라 할 수 있는데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다 보면 역시 괴로움이 일어난다. 나와 상대가 다를 뿐인데 내 것을 고집하니 상대가 틀린 게 된다. 하지만 크다 작다, 많다 적다는 상대적인 것일 뿐 그 자체로는 큰 것도 작은 것도 없다. 옳다 그르다, 맞다 틀리다도 마찬가지이다. 이를 일컬어 공이라 한다. 이 탐진치를 일컬어 삼독이라 하는데 인간 괴로움의 세 가지 원인이다.


그러면 살면서 괴로움이 좀 덜한 삶을 살아야 할 텐데 불교에서 가르치는 그 실천적 방법이 ‘알아차림’ 수행법이다. 욕망이 일어남을, 화가 일어남을, 내가 내 생각을 고집하고 있음을 내가 알아차리는 것이다. 안의비설신의라는 감각과 생각을 통해 들어온 대상에 순식간에 반응을 일으키기 전에 알아차림을 통해 그 반응을 선택할 수 있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 선택이 있다는 것인데 교차로에서 내가 신호등을 통제하느냐 못하느냐의 차이라 하겠다. 이 정도 수준까지는 많은 연습이 필요한데 그 방법 중 하나가 호흡 명상법이다. 작은 호흡의 드나드는 것을 알아차리는 연습으로 더 큰 감정이나 생각의 흐름을 반응하기 전에 알아차리는 훈련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 스님의 설법과 그간 익혔던 불교에 대한 지식으로 나름 수행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하지만 불교 지식이 내 삶의 괴로움까지 없애주지는 못한다. 수영장에서 힘을 빼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과 실제 힘을 빼는 것의 차이는 실로 크다. 의식주를 간소하게 하고, 성질대로 안 된다고 스트레스받지 말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며 내 생각을 너무 고집하지 않는 연습을 통해 조금씩 괴로움이 덜한 세계로 나아가는 여정이 있을 뿐 이 길에 완성이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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