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5. 물들고 싶다. 가을처럼

by 장용범

‘물들인다’는 말은 재미난 말이다. 서서히 바뀌어 간다는 의미가 있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이전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고 만다. 가을은 가을빛으로 물들이는 계절이다. 오랜만에 맑고 청명한 가을 하늘을 보았다. 요즘 중국에서는 전기 부족으로 공장 가동이 제한된다더니 그 영향인지도 모르겠다. 가을은 짧은 시기이지만 물들임의 정도가 하루하루 달라짐을 느끼게 한다..


사람의 습관이나 성격을 언급할 때도 물든다는 말을 자주 쓴다. 요즘은 나도 새로운 업무에 물들었나 싶다. 매일매일 새로운 일이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야 했던 영업부서와는 달리 현 업무는 부서 간 합의와 규정 검토를 주로 하다 보니 조용한 가운데 업무 성격도 호흡이 길어진 느낌이다. 영업이 앞에서 치고 나가는 일이라면 지금은 뒤에서 빠뜨린 걸 챙기며 가는 일이다. 그렇게 적응하며 생활하다 보니 어느새 나도 좀 느릿 거리게 된 것 같다. 처음에는 이 템포에 답답함을 느꼈지만 시간이 좀 지나니 이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환경의 영향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어떤 사람을 알고 싶거든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은 알게 모르게 물들어 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들기 위해서는 시간을 좀 들여야 하는데 순식간에 바뀌는 것을 물들인다고 하지는 않는다. ‘근묵자흑’이나 ‘맹모삼천지교’처럼 환경이 달라지면 그로부터 받는 영향도 달라진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한 가지다. 그렇다면 이왕 물들 것 같으면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물드는 게 좋겠다. 부모들이 인위적으로 교육 환경을 조성하는 강남 분위기는 아닐지라도 내가 가능한 여건에서 환경을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냥 좋은 환경에 들어가서 서로 교류하며 물들어 간다면 가장 간단한 해결책이겠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런 여건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여건이 안 되는 사람들이 좋게 물드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SNS나 메타버스 등의 온라인 환경을 활용하면 어떨까? 이제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넘어서는 시대가 되고 있다. 지금 오프라인 환경이 열악하다면 온라인으로 넘어가서 그 속의 좋은 환경에 나를 노출시키는 방법이 있다. 내가 원하는 방향의 사람들이 많은 그룹으로 들어가 그들과 교류하는 방식이다. 오프라인에 비해 제한은 있겠지만 달라진 시대에 걸맞은 환경 선택 방법이다. 그리고 나도 줄 게 있어야 한다. 이왕이면 긍정적인 것이면 좋겠다. 나도 물들지만 상대도 나로 인해 물들어 간다. 물질이 아니어도 따뜻한 음성이나 배려 같은 마음이라도 줄 수 있어야 나도 그들의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영향은 주고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물들기 위해서는 내 것만 고집하는 이기심을 좀 내려둬야겠다. 마지막으로 좀 길게 봐야겠다. 물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고무줄은 당기면 다시 돌아가는 탄성이 있지만 당긴 상태에서 오랫동안 잡고 있으면 손을 놓아도 늘어진 상태로 남게 된다. 인간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좋은 환경에 잠시 노출되었다고 금방 물들지는 않는다. 가을의 청명한 하늘을 보며 문득 파랗게 물들고 싶어 진다. 역시 가을은 남자의 계절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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