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의 하루를 의미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새벽에 일어나 또각이는 블로그 타이핑, 아침 산행 또는 걸어서 출근하기, 매일 글쓰기 동아리 활동 등이 떠오른다. ‘그게 돈이 돼?’라며 생산성과 효율을 내세우는 사람이 나를 보면 참 뻘짓거리한다 싶겠지만 적어도 그 일을 하는 동안은 몰입이 되고 재미를 느낀다. 최근에 트위트로 받은 이런 글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고작 글씨로 채워져 있는 종이뭉치에 푹 빠져서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소비하고, 어떤 사람들은 유치한 영화를 보면서 열광하고 심지어 장난감까지 수집합니다. 잔디밭에서 22명이 작은 공 하나를 차려고 발버둥 치는 행위에 수십억 명이 열광하고, 매일 저녁 TV 앞에 모여 앉아 눈물을 훔치기도 하죠. 퇴근 시간은 아직 멀었는데 벌써부터 시계를 보고, 나를 사랑하는지 확신조차 없는 사람을 위해 선물을 고민합니다. 이 중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어요. 이 모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의 총합을 우리는 삶이라 부릅니다. 그러니 떳떳하게 원하는 곳에 애정을 쏟으세요. 그것이 삶을 합리적으로 만들어주진 못해도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는 있으니까요. <출처:부기 영화>
애당초 삶은 합리적이지 않은 모순덩어리지만 인간은 어떤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고 열광하면서 재미를 느끼며 행복해한다. 신라 고승 원효에게는 극적인 일화가 많은데 파계를 하고는 스스로 민 중속으로 들어가 불교를 전파했을 때의 일이다. 이때부터 원효라는 이름을 버리고 스스로를 소성거사라 했는데 그 행색이 아주 비천한 거지꼴이었나 보다. 당시 무리 지어 다니던 사람 중에 사복이라는 사람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런데 둘이서 장례를 치르고 나니 사복이 좀 허전했나 보다. 원효에게 ‘네가 글을 좀 아니 내 어머니를 위해 좋은 말 좀 해라’고 청했다. 이에 나온 것이 회소곡이다.
태어나지 말지어다
죽기가 괴롭다.
죽어지지 말지어다.
태어남이 괴롭다.
하지만 사복은 뭔 말이 그리 복잡하냐며 좀 간단하게 다시 해보라고 했다. 이에 원효는 ‘사생고(死生苦)’라고 했다. 사생고인 우리의 삶을 합리성과 이성의 잣대로만 살기보다는 때로는 원하는 곳에 애정을 쏟아보자. 어차피 인간의 삶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의 총합이고 우리는 행복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