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9. 어설픔이 어필되는 시대

by 장용범

요즘 세상의 변화를 보면 ‘상상의 한계가 능력의 한계’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흔히들 하는 말이지만 코로나 이전과 이후의 삶이 많이 달라지고 있음을 실감한다. 과거의 사례를 보면 큰 변혁기에는 사람들을 계층 짓는 일들이 일어났다. 가까이로는 97년 IMF 외환위기를 들 수 있는데 이 사건은 한국의 노동자를 정규직과 계약직으로 나누는 계기가 되었다. 기업을 살리기 위해 도입한 고용의 유연성이 노동의 계층화를 가져온 것이다. IMF 이전에는 청소 아줌마나 운전기사, 보일러 기사도 정규직으로 채용되어 일하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부의 양극화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전의 기업들이 문을 닫기도 했지만 닷컴 버블을 타고 새로운 IT기업들이 출연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외 기술의 발전도 계층 변화의 계기가 되는데 개인용 PC의 보급과 인터넷, 스마트폰 등 하나의 기술적 혁신이 일어날 때 사회는 이전과 다른 세상으로 나아간다. 그런 면에서 이번 코로나 변혁은 또 어떻게 계층을 나눌지 궁금해진다. 지금은 어떤 시대인가? 코로나로 인한 단절과 폐쇄의 시대 같지만 전화, SNS나 줌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해 연결이 유지되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기술이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점점 익숙해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익숙함은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세상의 변화를 가져온다.


So What? 그래서 어쩌라고?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건가? 줌으로 회의하면 참가하면 되고, 부스트 샷 맞으라면 맞으면 될 것이고 그러다 방역지침 완화되면 만나고 싶었던 사람 만나 수다 떨면 되는 거지 왜 이리 요란을 떠나 싶다. 그런데 그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어제 오랜만에 마트엘 갔었다. 대부분 동네 슈퍼에서 구입하거나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마는데 연말이 되기 전 사용해야 할 포인트가 남아 세탁 건조기를 하나 구입하러 간 것이다. 주말임에도 그 넓은 매장에 사람들이 많다는 느낌은 못 받았다. 이래서야 유지가 될까 싶을 정도였는데 코로나 이후 대면 쇼핑의 타격은 분명 커 보였다. 만일 내가 대면 유통업에서 일하는 사람이면 전직을 심각하게 고민할 것이다. 카카오 뱅크가 잘 나가고 있다면 은행업의 미래를 예상할 수 있고, 개인 유튜버가 팬덤을 형성하고 BTS가 세계적인 인기몰이를 했다는 게 기존의 콘텐츠 유통채널이 아니라 유튜브를 통해 가능했다면 이건 판이 바뀌고 있다는 것일 수도 있다. 아무리 그래도 50대 중반의 특별한 재능도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을까도 싶었다. 지난 수차례 변혁기 때처럼 그냥 하나의 소비자로 남아 흘러갈 거란 생각도 있었다.


그러다 ‘상상의 한계가 능력의 한계’란 말에 꿈틀 했는데 최근 일련의 세미나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독서로 자극을 받다 보니 이 변화가 나에게 어떤 가능성을 열어 줄 것인지 고민하기에 이르렀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이 변화의 소비자로 남을 것인지 그래도 뭔가 하나 건지는 생산자로 남을 것인지 말이다. 그러던 차에 ‘애매한 재능이 무기가 되는 순간’이라는 책을 보게 된다. 이 책은 딸아이가 구입한 책인데 내가 먼저 읽고 있다. 저자는 평범한 직장인이면서 전시 미술가이다. 스스로를 직장인 아티스트라는 뜻의 ‘직티스트’라고 했다. 자신에게 돈벌이는 안전망이고 그 위에 자신이 끌리는 분야에서 경력을 쌓아가는 중이라 했다. 그를 보며 법륜 스님의 법사 시절 경험담이 생각났다. 기복 성격의 불교 이미지에서 벗어나 초기 불교의 가르침을 대중에게 전하고 싶은데 기반이 너무 없었다. 그래서 자신이 잘하는 수학강사를 하며 돈을 마련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조금씩 확장해 가는 방식이었다.


코로나는 분명 전 세계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의미가 없다면 무슨 소용인가. 책의 표지에 ‘어설픔조차 능력이 되는 시대가 왔다’는 선언적 문구가 나를 자극하고 있다. 나의 어설픔을 어떤 식으로 확장할 것인가. 흥미로운 화두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