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속성 두 가지가 있다. 항상 어딘가에 가 있고, 어느 쪽으로 가든 그곳으로 길을 낸다는 것이다. 그 어딘가는 시간과 공간의 매트릭스로 짜일 텐데 시간이라 하면 과거, 현재, 미래 중 하나일 것이고, 공간은 여기 아니면 그곳일 것이다. 이리 보면 마음이 가는 곳은 다음 중 하나이다.
* 과거의 그곳, 과거의 여기
* 현재의 그곳, 현재의 여기
* 미래의 그곳, 미래의 여기
이 중에서 우리에게 늘 만족과 충만감을 주는 유일한 곳은 ‘현재의 여기’라고 한다. 하지만 마음은 수시로 과거, 현재, 미래를 왔다 갔다 하고 이곳에 머물지 못하고 다른 곳을 배회하는 일이 잦다. 그럴 때마다 지금의 여기로 마음을 다시 데려오는 일을 반복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다른 곳으로 마음의 길을 내어 엉뚱한 곳에서 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후회나 추억, 회상이거나 미래의 희망, 불안, 근심 등이다.
어제 같은 직장의 한 해 아래인 후배가 연락이 왔다. ‘형님, 이제 도토리도 얼마 안 남았네요. 나가면 할 건 있어요?” 미래의 그곳을 묻는 질문이다. 사실 이런 질문은 나에게 특별히 관심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그냥 인사치레로 하는 말임을 안다. 남의 은퇴 후 삶이 뭐 그리 궁금하겠는가? 모든 인간은 자기 앞가림하기도 바쁘다는 것을 지금껏 살아온 생을 통해 아는 바다. 이에 대한 대답은 한결같다. “할 게 뭐 있나. 놀아야지.” 그러고는 상대의 반응을 살펴본다. 대답을 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도 별반 다를 바 없구나’는 듯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걱정하는 듯한 말을 섞어가며 몇 가지 조언이랍시고 해준다. 그런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여 가며 열심히 듣는 시늉이라도 할라치면 스스로도 좀 지나쳤다 여겨지는지 그래도 은퇴했던 선배들을 보면 다 그럭저럭 살고 있더라며 안심시키는 말을 해준다.
인간의 심리는 상대가 나와 같다는 사실에 저으기 안심을 하는 본성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나와 좀 다른 면이 있다 싶으면 잠시 관심을 보이지만 그런 경우 대개는 부정적인 험담을 한다. 그러다 그 차이가 넘어설 수 없는 탁월함으로 성장하면 이제는 그를 칭찬하는 모드로 전환하는 것 같다. 한 번씩 내가 어렵고 힘든 이야기를 할 때 상대의 표정을 살펴보면 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묘한 미소를 볼 때가 있다. 그러니 상대에게는 굳이 나의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다만 도움을 청하는 것과 푸념을 늘어놓는 것은 구별해야 한다. 일본의 소설가 소노 아야코는 ‘모든 인간은 원래 악하다’는 전제로 살아가기를 권한다. 적어도 실망할 일은 없다는 것이다. 나는 이를 두고 사람에게 너무 기대를 말라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나의 마음 성향은 과거 현재 미래 중 미래에 가 있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미래의 사건에 대한 대비를 한다거나 어떤 일에 대한 희망이나 기대를 품는 등의 행위이다. 그다지 좋은 행동은 아니다. 불교에 입문한 후 지금 여기를 벗어나 마음이 가 있는 것은 망상이라는 것을 배운 후로는 마음이 엉뚱한 곳에 가 있으면 지금 여기로 데려 오기를 반복하고 있다. 이러다 보면 언젠가는 몸과 마음이 올곧이 현재에 머무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에게 던지는 질문을 좀 바꿔보기로 한다. “앞으로 뭘 하지?”라는 것에서 “지금 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 발전시키지?”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