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나이다’라는 이순신 장군의 글을 대하면 당시 임금과 신하들의 무능함과 장군의 결연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선조의 졸렬함을 생각하면 한 대 갈겨 버리고 싶지만 후대로부터 두고두고 욕을 먹으니 개인에게는 이만한 벌도 없어 보인다. 임진왜란 당시 장군의 활약상을 보면 영화에서나 봄직한 극적인 반전에 전율을 느끼기도 하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좀 이상한 승리였다. 명량해전 당시 12척의 배로 어떻게 133척이나 되는 적의 전선을 괴멸시킬 수가 있을까? 이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된다. 장군의 승리를 단순히 정신적 승리로만 치부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이는 이유이다. 그런 면에서 장군은 문제 해결 능력이 아주 탁월했던 분이었는데 일본과 조선수군의 장단점을 철저히 파악했던 것 같다. .
조선 수군의 핵심전략은 원거리 포격전과 당파였다. 당파는 배들끼리 부딪혀 상대의 배를 깨어버리는 전술이다. 장군이 적에게 가까이 가지 말라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당시 일본군은 오랜 전란 끝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통일을 이룬 지 얼마 안 되는 시점이라 육상 전에 강한 면모를 보였다. 하지만 조선 수군은 병사라기엔 오합지졸이 많았다. 대부분 낫이나 곡괭이를 들었던 농민들이 전쟁으로 칼을 든 경우였다. 일대일로 만나면 불리하다는 의미다. 원거리 포격전을 위해서는 배에다 화포를 설치해야 하는데 그러면 배가 아주 튼튼해야 한다. 당시 판옥선은 단단한 소나무나 참나무로 만들었고 격자식으로 건조한 바닥이 편평한 평저형이었다. 평저형 배는 방향 전환은 빠르지만 속도는 느린 단점이 있다. 반면 일본 수군의 배는 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해 가벼운 삼나무로 만든 첨저형이었는데 나무와 나무는 쇠못으로 고정을 했다. 사실 일본군의 배는 전함이 아니라 육상 군을 실어 나르는 수송선의 의미가 컸다. 그래서 약한 일본군의 배는 반동이 큰 화포를 설치하기가 부적합했던 것이다. 일본군의 주력 무기인 조총은 유효사거리가 50미터 정도였지만 조선수군의 총통은 800보에서 1,500보의 사거리에서도 사격할 수 있었다. 게다가 평저형 배의 장점인 회전을 이용하여 한 면에서 발사하면 한 면에선 장전하는 식으로 배의 180도 회전을 이용하니 연발 사격인 셈이다. 게다가 총통의 반동이나 당파 시 배의 격자가 쪼여드니 더 튼튼해진 면도 있었다. 결국 멀리서 포격으로 배를 파괴하고 적군이 물에 빠져 허우적 대면 그제야 조선 수군의 배가 다가가 휘젓고 다니며 남은 배를 당파 하여 무찌르는 전술이었다.
오늘날 기획에서의 대표적인 문제 해결 방식을 보면 크게 벤치마킹, WBS, 브레인스토밍, MECE 등을 들 수 있다. 육상에서 주로 쓰이던 총통을 배에다 설치한다거나 판옥선이나 거북선처럼 이전의 배를 오로지 전투함으로 개조하는 등의 작업은 벤치마킹의 사례라 본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이 있다. 다만 그것을 나의 문제 해결에 어떻게 끌고 응용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정주영 회장이 밭에서 딸기나 상추 재배에 쓰이는 비닐하우스를 영하 20도의 건설현장에 도입한 것도 결국 벤치마킹의 사례인 셈이다.
다음은 WBS이다. 장군은 객관적 정보를 토대로 조선수군과 일본군의 장단점을 철저하게 파악하고 있었고 바다의 조류와 암초 등 지형지물을 완벽히 이용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원거리 포격전이었다. 이것이 WBS(Work Breakdown Structure)이다. 어떤 일이 주어지면 철저하게 하위 단위로 쪼개어 접근하는 방식이다. 단순히 우리 모두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해 싸우자는 공염불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브레인스토밍이다. 장군 주위에는 참모들이 많았다. 장군은 그들과 늘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중심을 잡고 여럿의 아이디어를 모으는 일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MECE이다. MECE는 맥킨지가 개발한 문제 해결 기법인데 Mutually Exclusive, Collectively Exhaustive의 약자로 중복 없이 누락 없이라는 뜻이다. 특정 사안을 분류하고 분해해 갈 때 중복과 누락을 해서는 같은 일을 두 번하거나 한 가지가 빠져 전체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이를테면 지구 상의 사람들을 분류하라고 할 때 백인종, 황인종, 흑인종으로 하면 애매하지만 남자와 여자로 하면 MECE적인 분류인 셈이다.
조선 수군의 현 상황인 As Is를 철저히 파악한 상태에서 장군의 To Be는 왜적을 물리치는 것이었다. 그 리고 그 엄청난 격차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군은 정말 다양한 문제 해결 방식을 사용했던 것 같다. 한편으론 안쓰럽기도 하다. 한 인간으로서 얼마나 외로웠을까.
한산 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는 터에
어디서 일성호가(一聲胡笳)는 남의 애를 끝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