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6. 두 은퇴자를 만나다

by 장용범

연말이 가기 전에 뵈어야지 싶어 옛 상사셨던 본부장님과 동료 부장을 만났다. 다 은퇴한 상황이고 나만 아직 현직이다. 오랜만에 뵌 본부장님은 심장수술 후 더 좋아 보였는데 담배도 끊고 나름 관리를 하고 있다고 하셨다. 분기에 한 번 정도 뵙고 있지만 큰 형님 같이 늘 반가운 분이다. 근황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은퇴 후 필요한 돈이 화제가 되었다. 은퇴 전 생각했던 것보다 돈은 그리 안 든다고 하셨다. 올해 64세인데 가끔 친구들 만나서 나눠 내는 밥값과 당구비, 낚시에 드는 비용 등에 써도 매월 받는 국민연금이 남더라는 말씀이다. 나이 들면 자녀 결혼 등 목돈 쓸 일이 있는 거지 개인이 쓰는 소소한 돈은 국민연금으로도 충분하다는 말씀을 들으니 내년 은퇴를 앞둔 나로서는 저으기 위안이 된다. 나와 동갑내기로 타 회사에 이직했다가 작년에 은퇴한 친구는 보험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다. 부인이 현직에 있고 재정적으로 아쉬움은 없지만 놀면 뭐하니라는 마음으로 출근한다고 했다. 말은 그리하지만 최근 지방의 손보 대리점도 하나 인수했다는 걸 보면 그의 성향상 여전히 활동적으로 일하는 것 같았다. 요즘은 SUV 자동차를 새로 구입한 후로 시간만 나면 차박 캠핑을 다닌다고 했다.


한 예능 프로 출연진에게 듣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물으니 ‘너 잘하고 있어’라는 말을 듣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 말을 해주니 그 많은 카메라 앞에서 왈칵 울음을 쏟아낸다. 면면을 보면 누구보다도 잘하고 있는 대세 연예인들인데 그들 스스로도 이런 위로를 듣고 싶었나 보다. 경쟁이 심한 사회일수록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다양성을 잃어버린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는 아무리 많이 가졌더라도 더 원하게끔 욕망을 부추긴다. 오죽했으면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내가 가지고 싶은 이유가 남이 가졌기 때문이라고 할까.


본부장님은 나의 은퇴 후 계획을 물어보셨다. 글을 쓰고 있고 이 분야의 일을 계속할 것 같다고 하니 역시 자주 들었던 돈이 될까라는 말씀을 하신다. 그리 돈이 될 것 같지 않지만 그냥 하고 싶다고 했다. 은퇴는 했지만 현직의 경력을 이어가는 친구와 아무 일도 안 하고 싶다는 본부장님을 보면서 차서(次序)라는 말을 떠올렸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기에 그 시기에 맞는 적절한 일을 찾는 게 필요하다. 같은 은퇴자의 삶이지만 은퇴 후 일 년, 은퇴 후 십 년의 삶은 많이 달랐다. 두 사람을 보면서 어렴풋이 나의 은퇴 후 삶에 대한 느낌이 왔다. 지난 20년 동안 해왔던 영업관리, 사람관리에 대한 스트레스를 더는 받기 싫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도 아닌 그 어딘가에 나의 은퇴 후 삶이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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