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많이 한다. 그게 정해졌다면 이번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무엇’을 달성했고, ‘어떻게’에 관한 탁월한 방식을 가졌다고 해도 그것을 ‘왜 하는지’에 대한 답이 궁하면 어느 순간 공허감이 밀려온다. 하지만 사람이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도 아닌데 존재의 이유나 목적을 논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굳이 삶의 목적을 정한다면 ‘사는 날까지 살아가는 것’ 일지도 모르겠다. 그래 그렇다면 이왕 좀 잘 사는 게 좋다. 그런데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일까? 우선 육체적으로 좀 편했으면 좋겠다. 먹고 자고 입고 사는 삶이 넉넉하길 바란다. 제 아무리 높은 이상을 가졌더라도 하루 걸러 하루 먹는 삶을 잘 사는 삶이라 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게 어느 정도 충족되면 이제는 좀 심심해진다. 사람은 심심하면 재밋거리를 찾는 법이다. 오늘날 이처럼 많은 춤과 노래, 예능과 스포츠가 대세가 되는 것도 그만큼 먹고는 살만하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자, 이제부터가 문제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재미는 싫증을 동반한다. 아무리 재미난 것도 오래 하다 보면 싫증을 느낀다. 그럼 또 다른 재미를 찾는데 이번에는 좀 더 강도 높고 짜릿한 재미를 찾게 된다. 실험실의 생쥐에게 쾌락을 느끼는 뇌의 부위에다 전극을 심고 그것을 외부의 버튼과 연결했다고 한다. 생쥐가 그 버튼을 누르면 쾌락을 느끼도록 한 실험 설계였다.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생쥐는 먹고 자는 기본 활동까지 건너뛸 정도로 버튼을 눌러 점점 피폐해져 갔다고 한다. 이것이 쾌락의 궁극적 모습일지도 모른다. 결국 인간은 잘 먹고 잘 살게 되면 재미를 추구하게 되고 재미의 끝판왕까지 가게 되면 공허감을 느끼도록 세팅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삶에는 균형이 필요하다. 기본 생활을 충족시키는 경제활동은 해야겠지만 자기 인생의 시간 전부를 먹고사는 것에만 쏟아 낸다면 좀 허무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좀 먹고살만하니 말초적인 재미만 추구하다 인생 종 치는 삶도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다.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세상에 내던져졌지만 정해진 생을 살고 마지막 눈을 감을 때 내 삶의 의미는 내가 선택하고 책임지며 살다 간 흔적들일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 깨우친 한 가지 아이디어는 아무리 생각해도 괜찮아 보인다. ‘앞으로 뭐 하고 살지’라는 고민은 늘 겉도는 면이 있지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은 뭐지, 그리고 이것들을 어떻게 발전시키지’라는 고민은 뭔가 손에 잡히는 현실감이 있어서다. 우리의 삶은 ‘지금 여기서’ 내가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 하는 일 , 내린 결정들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