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게 없는 것만큼 시간의 양이 크게 느껴지는 일도 없을 것이다. 복지국가의 국민들처럼 단지 그 나라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일을 않고도 살 수 있는 상황이면 실업자가 할 것이라곤 시간 때우는 일 말고는 없을 것 같다. 이럴 때 인간은 존재의 허무를 느끼게 되고 그 상황을 잊기 위해 술과 마약에 찌들기도 한다. 먹고사는데 필요한 모든 게 지원된다면 걱정이 없을 것 같지만 인간이란 존재가 꼭 그런 것은 아닌가 보다.
Bronnie Ware라는 호주의 한 간호사는 생의 마지막에 있는 사람들을 간호하며 그들이 죽음을 앞두고 후회하는 것들을 조사한 적이 있다. 크게 다섯 가지로 압축되었는데 ‘남들이 내게 기대하는 것보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 볼 걸, 그렇게 열심히 일하지 말 걸, 내 감정 표현하는 것을 좀 자주 할 걸, 친구들과 좀 더 가깝게 지낼 걸, 행복은 선택이었는데 그냥 나를 좀 행복하게 내버려 둘 걸’이었다고 한다. 죽음을 앞둔 절박한 사람들이 했던 말들이 대부분 공통적이었나 보다.
사실 나는 일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먹고살기 위한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건 더더욱 싫어한다. 하지만 사람이 자기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는 없는 법이니 일을 해야 했고 어느덧 30년이 넘어 은퇴를 앞두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직장에서 뒤늦게 나의 적성을 찾아 설계사 영업관리라는 직무를 선택했고 일인지 놀이인지 모를 정도로 재미나게 직장생활을 하는 행운을 누렸다. 그 직무의 장점은 출근 후 굳이 사무실에 매여 있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출장이 잦아 지점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갔고 내가 생각하는 대로 비용을 투입하고 마케팅을 시도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회사에서는 사무공간과 인력, 예산을 지원해 주고 나는 내 사업하듯이 맘껏 돌아다니고 펼칠 수 있어 좋았다. 이런 걸 보면 나의 성향은 어딘가에 구속되는 걸 싫어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자유’라는 단어가 그리도 끌리나 보다.
죽을 때 후회하는 것 가운데 첫 번째가 ‘남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대로 살기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볼 걸’이라고 하는데 일에서 벗어나는 정년 후의 삶은 그러기에 딱 좋은 시간들이다. 한 직장에서 30년 동안 일하면서도 장돌뱅이 같이 돌아다니는 직무를 택했는데 이제는 있고 싶어도 나가라고 하는 상황이니 잘됐다 싶다. 은퇴하고서 왜 더 일을 않느냐고 한다면 ‘이 나이에 할 게 뭐 있나’라며 슬쩍 미소를 흘리고 말자. 그리고 돈벌이가 되든 말든 하고 싶은 것을 하자.
은퇴 후에도 계속 일해야 한다는 말들을 주변에서 자주 한다. 100세 인생에 들어갈 돈이 얼만데 놀면 안 된다며 불안감도 부추기고 있다. 유럽에서는 일에서 벗어나는 정년을 손꼽아 기다린다고 하는데 우리는 죽을 때까지 일을 해야 행복하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해는 된다. 아직 아이들이 취업도 안 했고, 결혼도 남았고, 나이 들면 병원비도 더 들어갈 것이다. 그런데 어쩐다. 감사하게도 나이 들었다고 써 줄 곳이 없네 ^^;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돈을 주는 것보다 부모가 독립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는 게 도와주는 거다. 부모 자식의 관계는 서로 각자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리고 미래의 내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일을 더 해야 한다는 건 좀 이상하다. 먼저 삶과 죽음에 대한 사생관이 정립되어 있어야겠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사람은 어떻게 죽었는가 보다는 어떻게 살았는가로 평가되는 법이다. 은퇴 이전의 삶이 온갖 스트레스를 한 몸에 받으면서도 가장으로서의 책임 때문에 견뎠다면 은퇴 후의 삶은 그런 부분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다. 각자가 누리는 자유의 범위는 사람마다 다른 법이다. 그 최고봉은 무소유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