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 산다는 건 고(苦)다

by 장용범

꼬집으면 아프다. 왜 아플까?

‘꼬집었으니까 아프지 그걸 말이라고 하냐’고 하겠지만 좀 더 생각해 보면 살아있으니까 아픈 것이다. 오랜만에 불교 TV에 출연했던 강신주 박사의 강의를 들었다. 주제는 고(苦)에 관한 이야기였다. 만일 내 다리가 의족이거나 마비 증상이 있는 상황이면 꼬집어도 아픔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통증을 느끼고 괴롭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일체개고(一切皆苦)는 우리의 삶을 포함해 세상 모든 게 원래 괴로운 것이라는 뜻으로 불교 가르침의 출발이기도 하다.

“행복이 먼저이고 행복하지 못하면 고통이라고 느끼시나요? 아니에요. 언제나 고통이 먼저이고 그 고통이 잠시 완화되어 느껴지는 게 행복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행복을 추구하는 건 맞지 않아요.”

그렇다면 우리는 살아가면서 행복을 추구할 게 아니라 좀 덜 고통스러운 방법을 찾아야 하는 건가?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맞는 것 같다.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다는 것도 달리 보자. 어떤 상태에서 좀 더 나은 상태로 가면 좋다는 느낌은 잠시뿐이고 다시 그 상태가 불편해지고 더 나은 상태를 욕망하게 된다. 저기서는 누워서 자는 게 최상인 것 같지만 그것도 하루 종일 해보면 지긋지긋해진다. 나는 부정맥 시술 후 꼬박 하루를 움직이지 않고 누워 지내야 했는데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게 누워 지내는 것 같았다. 결국 어떤 상태에 머물건 고(苦)는 피할 수가 없다. 괴롭고 아프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그러니 고통에서 벗어나려 말고 이건 내가 살아있는 한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자세로 수용하고 받아들일 마음부터 내어야겠다. 꼬집으면 아프다. 아픈 게 싫으니 꼬집는 걸 중단한다. 그러면 고통이 사라진 잠시의 행복감을 느낀다. 내가 고통을 느끼면 그 고통을 주는 행동을 중단하거나 강도를 줄이게 된다. 그런데 나의 행동으로 인해 타인이 겪는 고통을 내가 느끼게 된다면 어떨까? 마찬가지로 그에게 고통을 주는 행동을 중단하거나 약하게 할 것이다. “우리는 고통의 존재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타인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면 어찌 되는지 아세요? 세상이 잔인해집니다.”


고(苦)와 락(樂)은 언제나 함께 온다. 만남의 기쁨이 있지만 헤어지는 슬픔이 있고, 술자리의 즐거움이 있지만 이튿날 숙취의 괴로움이 있다. “괴롭지 않으려면 즐거움도 함께 버려야 해요. 그것이 중도(中道)입니다. 그러나 중도(中道)만이 답은 아니에요. 내가 즐거움을 취했으면 괴로움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방법도 있어요.” 이건 법륜 스님의 말씀이다. 즐거움만 취하고 괴로움은 피하고 싶은 게 중생의 마음이지만 세상일은 그렇지 않다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중생 : 괴롭습니다.

*붓다: 왜요?

*중생 : 더 가지고 싶고, 더 올라가고 싶고, 더 인정받고 싶은데 그게 안 되어서요.

*붓다 : 정 괴로우면 그런 마음을 안 내면 되잖아요.

*중생 : 에이, 그게 어디 사는 건가요.

*붓다 : 그럼 계속 그렇게 하면서 괴로워하세요.


괴로움, 아픔을 대하는 관점을 달리해야겠다. 내가 살아있는 한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괴롭고 아프다면 그 원인 된 행동을 않거나 줄이면 될 일이지만 그게 영 사는 것 같지 않다면 계속 그렇게 추구하되 괴로움이나 아픔은 당연한 걸로 받아들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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