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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6. 어린이날의 회상

by 장용범

어린이날이다. 이제 20대 중반을 넘긴 딸들이 있는 집이라 어린이 없는 어린이날은 그저 빨간 휴일 이상의 의미는 없다. 좀 징그럽긴 하지만 나도 엄마손을 잡고 깡충거리던 어린이였다.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시절 어린이날은 마냥 기분 좋은 날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어린이날은 3학년 때였다. 어린이날 행사가 당시 공설운동장에서 처음 열린 날이었다. 우리 삼 남매는 그날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평소에는 볼 수 없는 다채로운 행사들을 볼 기대에 마음이 부풀었었다. 그런데 정작 어린이날 아침, 문제가 생겼다. 어머니의 도시락 준비가 행사 입장시간에 맞출 수 없을 정도로 늦어졌기 때문이다. “괜찮아. 입장할 수 있을 거야”라며 어머니는 우리를 다독였지만 어린 나는 반신반의했다. 마침내 도시락과 간식 등 짐을 잔뜩 들고서 부산 구덕 운동장에 갔지만 야속하게도 출입문은 굳게 닫혀 입장할 수가 없었다. 그때의 실망감이 얼마나 컸던지 성질내고 울먹거렸던 기억이 있다. 우리는 별수 없이 도시락을 들고 운동장 근처 공원을 찾아갔다. 근처에 대학이 있고 맑은 개울이 흐르는 공원은 한적하고 조용했다. 운동장의 “와~”하는 함성이 간간이 들려오는 공원에서 우리들은 물장구도 치고 도시락을 먹으며 하루를 풍성하게 보냈었다.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다. 어머님은 어린이 날을 맞으니 삼 남매를 키워낸 옛일이 생각난다고 하셨다. 어머니도 그때 운동장에 못 들어갔던 일을 회상하셨다. 처음에는 우리들에게 미안하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드문 조용한 공원에서 어린 우리들과 오붓하게 시간을 보냈던 그 기억이 참 좋았다고 하셨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당시 행사가 열렸던 운동장엔 너무 많은 인파들이 몰려 화장실가기도 어려웠고 한 자리에 꼼짝 못 하고 앉아 뙤약볕을 온종일 받아야 해서 힘들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한적하게 보냈던 우리의 어린이날이 더 좋았던 셈이다.


처조카가 아이 아빠가 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냥 미소가 지어진다. 어릴 때부터 조카의 성장과정을 가까이서 보았던 터라 새삼 아이 아빠가 된다는 소식이 우습기까지 하다. 그리고 휴일인 어린이날이지만 집안이 좀 분주하다. 딸아이가 내일 캐나다로 출국하기 때문이다. 3주간의 단기여행으로 친구가 있는 캐나다와 미국을 들렀다 올 생각이라 한다. 어릴 적부터 가족단위 외국여행을 다닌 탓인지 아이들은 혼자서도 외국에 나가는 여행에 거부감이 덜한 편이다. 어린이날 짐을 싸는 딸아이를 보니 괜히 감상에 젖는다. 그렇게 한 때의 어린이는 점차 어른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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