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갑내기인 지점장을 만나 점심을 함께 했다. 그도 직장생활의 부침을 꽤나 많이 겪은 사람이다. 같은 나이라 함은 그도 나처럼 올해를 마지막으로 직장생활을 끝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의 대화는 은퇴 후의 삶으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은퇴를 앞둔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그도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비치며 나의 계획을 듣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나는 좀 엉뚱한 이야기를 꺼냈다.
*나 : 김 지점장은 몇 살까지 살 것 같아요?
*지점장 : 글쎄요. 백세 인생이라 하지만 추세로 보아 거의 팔십 이상은 살겠죠.
*나 : 나는 딱 75세까지만 살고 싶어요.
*지점장 : 어휴, 너무 이른 나이인데요.
*나 : 그 정도 나이가 되면 아이들은 40대이고 가정적이나 사회에서 내 역할은 어느 정도 끝났다고 보거든요. 물론 그 나이 이상 살 가능성이 높긴 하죠. 하지만 내가 죽는 나이를 정해두고 세월을 역산하면 오늘 내가 뭘 하는 게 좋을지 생각하게 되더군요.
75세에 내가 영면한다는 가정을 하면 나에게 남은 시간은 19년 정도이다. 요즘 들어 한 해 한 해 지나가는 세월의 속도를 보면 그리 많이 남은 것 같지 않다. 남은 생애 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를 놓고 보면 나를 위주로 살아가도 좋은 여건이다. 직장에서는 그만 나가 달라고 등을 떠민다. 이건 감사한 일이다. 어느 누구도 30년 넘게 직장을 다니고 정년을 맞은 나에게 다시 일자리를 찾아 돈을 더 벌라고 하기에는 좀 미안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많든 적든 지금까지 축적한 것이 내가 가질 수 있는 물질의 최선인 셈이다. 나머지는 이 안에서 적당히 먹고살면 될 일이다. 괜히 더 벌려고 무리한 투자를 하거나 사업을 펼치는 게 사실 더 위험하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남은 생을 벌이에 크게 매이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진 셈이다. 남은 생이라고 하지만 75세 정도까지가 그나마 제정신을 유지하고 육체의 건강을 유지하는 기간이다.
사실 돈에 매이지만 않으면 할 것은 아주 많다. 특히 배움의 과정은 끝이 없으니 남은 기간을 사람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채우는 공부의 시간으로 가져도 좋다. 이건 정말 돈이 별로 안 드는 활동이다. 그리고 돈을 안 받는 조건이면 그간 나의 경력을 펼칠 수 있는 자원봉사 자리도 많을 것이다. 게다가 코로나 이후 보편화된 온라인 환경은 내가 직접 스마트 폰으로 강의를 찍어 유튜브에 올려도 되고, 자신의 능력 중 돈으로 환산할 수 있겠다 싶으면 크몽이나 숨고 같은 곳에 단기 알바를 올리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정부나 지자체의 창업과 창직에 대한 지원을 노크해도 된다. 생각이 비슷한 사람끼리 커뮤니티를 만들어 사회적 기업의 사업계획서를 잘 세우면 나랏돈으로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활동을 시작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의 기본은 리스크 관리이다. 지금껏 벌어둔 것은 남은 생을 위한 생활자금으로 남겨두고 자신의 능력으로 새로운 샘을 파보는 것이다. 그게 여행이 되었건 글쓰기가 되었건 아니면 작은 악기를 하나 다루는 것도 좋다. 누가 아는가. 나중에 길거리 버스킹이라도 하게 될지. 이제 돈벌이는 좀 내려두고 적게 먹고 소박하게 살자는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본다면 생각보다 할 수 있는 게 많이 보인다. 그러다 운이 좋으면 벌이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안 되어도 그 누리는 과정이 즐거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