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을 혼자 지내보니
‘나는 자연인이다’는 프로그램을 보며 자연 속에 혼자 산다는 느낌을 상상해 보곤 한다. 나는 지금까지 혼자 살았던 경험이 딱 두 번 있었다. 첫 번째는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삼 년 정도 혼자 지낸 경험이다. 그때는 해방감을 만끽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26년을 살아오면서 혼자 살아 본 경험이 처음이었기 때문인데 너무도 자유롭고 편안했다. 나만의 독립된 공간이 그냥 좋았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혼자 지내는 감흥도 시들해져 갔는데 퇴근 무렵이면 괜히 불 꺼진 집에 들어가는 게 싫어 동료들과 저녁 술자리에 어울리곤 했다. 그러고는 결혼 이후로 혼자의 생활도 끝내게 되었다. 오히려 가족들이 더 늘어났는데 처가가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서울에 발령받아 혼자 올라온 시기였다. 6개월 정도로 그리 길지는 않았다. 당시 함께 발령받았던 동료와 살기로 하고 홍대입구 연남동에 방 두 개짜리를 구했는데 갑자기 그가 따로 살겠다고 하기에 졸지에 임차료 비싼 서울에서 방 두 개를 독차지하게 되었다. 이때는 좀 긴장했던 것 같다. 야근이 잦기도 했고 저녁에 술 마시고 나면 다음날 힘들기도 했지만 출근 준비가 너무 번거로워 본의 아니게 절제된 생활을 이어갔었다. 하지만 이것도 6개월 정도 하니 질리기도 하고 매주 집으로 내려가는 것도 마음고생이었기에 가족들의 이사를 결정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5학년이었으니 서울생활 치고는 좀 늦은 시작이었다. 그때부터는 긴장감도 풀려 저녁에 다시 동료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늘어났다. 아내는 혼자 살 때는 술도 안 마시고 잘 지내더니 가족들 올라오니 풀어진다고 핀잔을 주었다.
이런 일련의 경험에서 나의 성향은 가끔은 몰라도 혼자 살기는 어려운 사람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래서인지 주변 직원들 중에 결혼도 않고 오랜 기간 혼자 사는 이들을 보면 참 용하다는 생각도 든다. 또한 부서에는 세 사람의 주말부부가 있는데 매주 금요일이면 가족들 곁으로 갔다가 월요일 첫 차로 지방에서 올라온다. 특이한 것은 남자들은 매주 금요일마다 내려가는데 여성분은 거의 안 내려가는 것 같았다. 나이 들수록 남자들이 더 외로움을 못 견뎌하는 것 같다.
그런 내가 요 며칠 혼자 지내고 있다. 두 딸은 각자 대학 기숙사에 머물거나 여행을 가있고, 아내는 처가에 머물고 있어서다. 오랜만의 혼자 생활이라 첫날은 좀 편안한 마음이었다. 아내의 성가신 잔소리가 없으니 내가 평소 원했던 조용한 분위기였다. 그런데 이틀 정도 지나니 들리는 건 냉장고 소리와 시계 소리뿐이고 조용한 시간에 뭔가 좀 할 것 같았는데 소파에 드러누워 유튜브나 보는 것이 전부였다. 노래 가사 중에 ‘헤어지면 그리웁고 만나보면 시들하고, 몹쓸 건 이내 심사’라는 것이 있는데 인간은 무얼 하나 불편하고 괴로울 수밖에 없는 디폴트 값이 있나 보다. 혼자서도 잘 지내는 방법을 생각해 보니 그냥 늘어져 지내는 게 아니라 이것도 계획된 생활이 필요해 보인다. 그런 것 없이 넘쳐나는 시간 속에 던져지면 그냥 허우적거린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하루 동안 할 것을 정해두고 그에 맞게 시간을 보내야지 나아가고 성장한다는 느낌이 들면서 혼자라는 시간도 풍요로워지는 것 같다. 이렇게 보면 나는 혼자 살더라도 뭔가를 계속해야 할 성향인가 보다. 아내의 말처럼 “인간아, 왜 그리 피곤하게 사니?”라는 말을 들을 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