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9. 안정감이 흔들릴 때

by 장용범

무언가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다는 것은 안정감을 준다. 초저녁에 잠이 들었다 깼는데 딸아이가 아직 안 들어왔다. 시간은 자정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기말 과제한다고 스터디 카페에 갔다는 것은 들었지만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은근히 걱정이 되어 전화를 하니 받질 않는다. 더 걱정이 된다. 조금 있다가 다시 전화하니 그제야 전화를 받으며 집으로 오는 중이라고 했다. 아이의 늦은 귀가를 기다리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무언가가 늘 있어야 할 자리에 있다는 것과 반복되어야 할 일이 반복된다는 것은 안정감을 준다는 사실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매주 수요일이 분리수거 일이다. 만일 이날 쓰레기를 버리지 못하면 남은 한 주 동안 집안에는 쓰레기가 쌓이게 된다. 함께 사는 가족이라면 늦어도 밤 10시 이전에는 들어와야 남은 가족들에게 편안함을 선사한다. 만일 귀가도 늦은 데다 연락마저 안 되면 다른 가족들에게 심리적 민폐를 끼치는 행동이다. 그러니 늦으면 늦다고 연락이라도 주어야 다른 가족들을 배려하는 행위이다.


조선이라는 왕조는 이성계가 세웠지만 그 실무적인 작업은 정도전이 설계했다. 그 설계도가 ‘조선경국전’이라는 법전이었다. 그 안에는 조선이라는 새로운 나라를 유지하기 위한 여러 규정들을 정해 놓았다. 조선의 건국이념과 인간사의 중요한 의례인 관혼상제에 이르기까지 조직별로 신분별로 행할 일들을 정해 둔 것이다. 국난의 위기 속에서도 조선이 500년이라는 긴 역사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리 왕이라 해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조선경국전’은 몇 차례의 개정을 통해 조선시대 통치의 기본 법령인 ‘경국대전’으로 이어진다.


안정되고 평화롭다는 것은 자칫 변화가 없는 답답한 세상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사람들은 오랜 기간 변화 없이 안정만 지속되다 보면 변화를 찾게 된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의 안정까지 무너뜨리는 변화는 좋지 않다. 하지만 원했던 바는 아니지만 나의 안정까지 흔들리는 변화가 느껴질 때가 있다. 이럴 땐 안정에 집착하지 말고 그 변화에 올라타야 한다. 그리고 그 새로운 변화 속에서 또다시 안정을 추구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조선은 안정적인 국가 운영체계 덕분에 500년을 이어왔지만 세상이 변하고 있는데도 그 틀을 버리지 못했기에 망국의 길로 들어섰다. 그런데 코로나 엔데믹인 지금의 상황이 그렇다. 내가 아무리 안정을 원해도 외부의 영향으로 안정이 흔들리는 조짐들이 너무 자주 보인다. 어떤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살펴야 할 때이다. 아내는 신문을 보더니 국밥 한 그릇에 만 원, 커트에 이만 원이라는 기사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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