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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8. 우선순위 정하기

by 장용범

서울의 집값이 이해가 안 될 정도로 올랐다. 코로나로 풀린 돈의 규모로 보면 실물자산의 대표 격인 부동산이 오르고 주식시장에 돈이 몰리는 현상을 당연하게 봐야 한다고도 하지만 문제는 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누구도 모른다는데 있다. 인간의 심리는 불안한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는데 지금은 어디 하나 불안하지 않은 것이 없다. 전 세계가 한꺼번에 불안한 상황이다 보니 이 나라가 상대적으로 괜찮다는 것이지 결코 괜찮은 상태는 아닌 것이다.

얼마 전 지방에 근무하는 친한 직원이 내년도에는 서울에서 함께 근무하고 싶다는 의사를 비쳤다. 나야 좋지만 지금처럼 불안한 시기에 지방에서의 안정을 마다하고 굳이 서울생활을 한다는 게 어떨지 모르겠다는 우려를 전했다. 더구나 중년의 나이에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올라온다는 것인데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했다. 본인도 그 부분이 걸리는지 가족들과 좀 더 의논한다더니 기어이 올라와야겠다는 연락이 왔다. 여러 사정이 있겠지만 내년도 현장 영업에서 돌파구를 못 찾겠다는 이유도 있는 것 같다. 서울 생활의 낯선 도전보다도 현 상황의 어려움이 결정에 더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다들 불안한 것이다.

불안할 때는 안정을 찾게 마련이다. 어쩌면 그 직원은 그 안정을 위해 과감한 결단을 내린 것인지도 모른다. 침몰하는 배에서는 차가운 바닷물로 뛰어들어야 하는 거지 아직 괜찮아 보이는 선단을 찾아가는 게 현명한 처사는 아니기 때문이다. 본인의 의사를 지금의 상사에게 잘 전달하고 전출 내신을 내라고 했다. 아직 발령 전이라 뭐라 말은 못 하겠지만 지금쯤 기대와 불안감이 함께 있을 것 같다. 40대 중반에 가족들을 두고 혼자 상경할 때 내 마음이 꼭 그러했었다. 올라와서 방을 구하는데 이렇게 많은 집들 중에 내 몸 하나 쉴 곳이 없음에 괜히 서러운 마음마저 들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참 현명하게 방을 구했다는 생각이 든다. 당연한 얘기지만 회사에서 가깝고 쾌적한 환경의 깨끗한 방은 비싸다. 그렇다고 돈에 맞추다 보면 출퇴근 등 생활의 질이 떨어진다. 이 모두를 충족시키려니 방 구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당시 생각한 방법은 우선순위에 둘 나의 원칙을 정하는 것이었다.
1. 출퇴근이 가까워야 한다.
2.월세 40만 원까지는 수용한다. 전세는 걸 수 있다.
그리고는 회사를 기점으로 지하철을 타고 한 정거장씩 타고 내리기를 반복하며 방을 구했는데 그곳이 홍대 근처 연남동이었다. 당시 직원들의 부동산에 대한 이런저런 조언들은 거의 전문가 수준 같았지만 나의 원칙을 잘 지켜 나름 만족스러운 방을 구할 수 있었다. 이 경험은 그 후에도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유용하게 써먹었다. 여러 상황들이 혼란스러운데 일의 방향을 잡아야 한다면 나는 늘 다음의 수순을 밟는다.
첫째,
선택하는데 고려해야 할 것들을 쭉 나열해 본다.
둘째,
중요도 별로 우선순위를 정한다.
셋째,
우선순위 중 상위 1-2개 정도만 남기고 나머지는 과감하게 버린다.
넷째,
그 조건 하에 최선의 것을 선택하고 행동에 옮긴다.

살다 보면 처음부터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기란 애당초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그럴 때 힘을 발휘하는 것이 우선순위 원칙 정하기인 것 같다. 많은 것이 불안한 시대이다. 한 해를 마무리 짓는 이 시점에 나의 우선순위를 쭉 나열해 보고 점검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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