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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9. 멘토 사진을 보면서

by 장용범

최근 인터넷에서 두 사람의 사진을 캡처 인화해서는 사무실 책상 앞에 붙여 두었다. 시인 류시화와 오쇼 라즈니쉬이다. 우리는 살면서 누군가의 삶이 참 부럽다고 여겨질 때가 있다. 실제로 그 사람의 삶이 부러워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제쳐 두고라도 그냥 그들의 드러나는 삶이 부러운 것을 말한다. 그 대상이 어떤 이에게는 돈 많은 재벌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이에게는 권력자일 수도 있다. 학문의 길에 들어선 사람이라면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일 수도 있겠다. 그런 존재가 나에게는 류시화 시인과 오쇼 라즈니쉬이다. 이것은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다를 것이다. 나에게 두 사람은 몇 가지 공통된 이미지로 엮인다. 그냥 떠오르는 단어로는 시와 철학, 명상, 안정된 경제적 기반, 여행, 자유 등이다. 뜬금없이 두 사람의 사진을 인화하고 싶었던 이유는 좋아하는 아이돌의 사진을 가지려는 팬의 마음과 같은 것이다. 조금 다른 점은 아이돌의 사진이 그저 보기에 좋은 것이라면 내가 가진 두 사람의 사진은 어떤 사안에 대한 나의 질문과 탐색의 매개로 활용하고자 함이다. ‘만일 류시화라면 어떠했을까?’ ‘라즈니쉬라면 이럴 때 어떤 조언을 할 것인가?’라고 그들의 사진을 보며 되묻는 것이다. 결국 내가 묻고 내가 대답하는 형식이다. 그런데 그것을 이미지로 만들어 앞에 두면 좀 객관적인 입장이 되는 것 같다. 마치 그들과 대화하는 느낌도 든다.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세 가지 동기가 돈과 자유, 의미라고 하는데 저 두 사람은 ‘자유’에 치우친 삶 같다. 그렇다고 세속을 아주 벗어난 것도 아니다. 그냥 ‘안정된 자유인’으로 보인다. 몸은 현실에 살고 있지만 영적으로는 자유를 지향하는 이미지로 투영된다. 왜 그리 생각하냐고 물으면 딱히 할 말은 없다. 그냥 그렇게 보이고 끌리는 것이지 분석의 대상은 아니다.


이리 보면 나에게도 현실을 벗어난 몽상가적 측면이 없지 않다. 처음엔 내가 막연히 하고 싶은 것들을 위시리스트(Wishlist) 정도로 치부하고 말았는데 어느 시기부터 작은 시도라도 해보자 싶어 남 모르게 조금씩 발을 담그는 편이다. 하지만 무모함은 피하려고 몇 가지 지침을 정하긴 했다.


1. 할까 말까 망설여질 땐 하는 걸로 하자. 망설임 자체가 5:5의 확률이다.

2. 세상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만큼 나에게 큰 관심이 없다. 이 순간도 그들은 그들의 문제를 처리하느라 남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다.

3. 몸과 정신이 온전한 상태는 생각보다 길지가 않다. 나의 활동 가능 영역도 70세까지는 외국도 가겠지만, 71~75세 까지는 국내 정도, 76~80세 까지는 살고 있는 지역, 80세 이후는 거의 동네 수준으로 줄어들 것이다. 85세 되신 내 아버님을 뵈면 집 밖으로도 잘 안 나오신다. 나이에 따라 활동범위도 줄어드니 남은 인생 하고 싶은 것을 너무 미루지 말자.

4. 세상에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이 있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은 수용하고 적응하는 것으로 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것에만 관여하자.

5. 나 자신이 불행한데 주변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는 없다. 운동과 마음 챙김으로 나의 에너지를 적절히 관리하자.


내가 당장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주어진 여건에서 삶을 대하는 태도는 선택할 수 있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여 할 수 있는 것은 하고, 할 수 없는 것은 하지 않는다. 참 간단하고 쉬운 것 같은데도 쉬운 일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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