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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2. 크리에이티브 시니어

by 장용범

“상상력을 가장 잘못 사용한 결과는 불안감이다. 그리고 가장 잘 사용한 결괴는 창의력이다.”_작가 <디펙 초프라>


심상은 마음이 그리는 이미지이다. 우리가 공포 영화를 볼 때 긴장감 주는 음악이 들리면서 주인공이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려 하면 이내 무언가가 나타날 것 같아 불안해한다. 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는 공포 영화를 무섭지 않게 보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귀신이 나타나는 시점에 카운트 다운을 표시하면 공포영화의 무서움은 시시하게 여겨진다고 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무언가에 대한 우리들의 두려움과 불안감이 사실은 상상력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주말에 ‘정년 후의 삶’이라는 책을 읽다가 ‘크리에이티브 시니어’라는 조금 생소한 용어를 접했다. ‘액티브 시니어’가 왕성한 활동력을 가진 시니어 층을 뜻한다면 ‘크리에이티브 시니어’는 자신의 삶을 남과 비교하지 않고 삶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인데 작지만 확실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간다고 했다. 좀 뜬구름 잡는 것 같았는데 그 방법으로 새로운 경험과 배움을 찾아 즐기기를 권했다. 내가 평소 생각하는 바와 일치하는 듯해 저자의 주장이 반가웠다. 하루는 입사 동기가 내 부서에서 운영 중인 은퇴자 재취업 프로그램을 문의하기에 기존 선배들의 계약기간이 올해로 종료되니 입사에 문제는 없을 거라고 답해 주었다. 그런데 동기가 부서장인 나의 재취업 순위는 영순위겠다는 말을 하기에 “글쎄다”라며 말을 흐렸다. 올해 말 실제로 은퇴했을 때는 다른 마음이 들지 모르겠으나 지금은 별 생각이 없어서였다. 노동으로 돈을 버는 것은 어떤 형태든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의 선배들도 퇴사 전에는 부서장이나 책임자 직급이었지만 민원조사역이라는 계약직군으로 입사 후에 각종 민원의 조정자 역할을 수행하며 받는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은퇴를 앞둔 유럽인들은 은퇴 후 삶을 기대하고 낙관적으로 보는 반면 한국이나 일본의 은퇴예정자들은 불안감을 더 느낀다고 한다. 주된 이유가 경제적 곤궁 때문이고 그래서 돈을 더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것 같다. 하지만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대상으로 지금껏 살아오면서 후회되는 것을 설문하면 대부분 ‘하고 싶은 것을 할 걸’, ‘일을 좀 덜할 걸’ 같은 답변을 한다 하니 은퇴해서까지 돈 때문에 마지못해 일을 하는 것은 생각해 볼 문제이다. 젊어서도 제대로 벌지 못했던 돈이 은퇴 후에 벌린다는 게 좀 이상하지 않은가? 오히려 어린 사람들의 지시를 받으며 심적으로 자존심 상하고 우울감만 더 생겨날지도 모를 일이다. 그냥 지금 가진 것을 이게 내 평생 가질 수 있는 재산인가 보다 생각하며 수준에 맞게 아껴 쓰는 게 현명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은퇴 후 정말 돈 때문에 일을 더 해야 할 상황이면 돈벌이로서의 일과 자신을 철저히 분리할 수 있는 냉정함을 유지해야 할 것 같다.


상상력을 가장 잘못 사용한 결과가 불안감이라는데 은퇴를 맞이하며 불안해한다면 상상력을 잘못 사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크리에이티브 시니어’란 말처럼 은퇴 후의 상상력을 잘 사용하여 창의적이고 재미와 의미를 찾는 시기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싶다. ‘어떻게?’라고는 묻지는 말자. 그건 각자의 과제이다. 누군가에게 재미난 것이 나에게도 재미나다고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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