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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9. 살불살조(殺佛殺祖)

by 장용범

안이건 밖이건 만나는 것은 / 무엇이든지 바로 죽여 버려라(向裏向外 逢著便殺)​ /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逢佛殺佛)​ /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逢祖殺祖)​ /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고(逢羅漢殺羅漢)​ /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逢父母殺父母)​/친척을 만나면 친척을 죽여라(逢親眷殺親眷)​ / 그렇게 한다면 비로소 해탈을 할 수 있을 것이다(始得解脫)​ / <臨齊(임제)>


글자 그대로의 뜻으로 보면 참 섬뜩한 말이지만 옛 선사들의 이야기는 은유적인 표현이 많다. 이 말은 자기 스스로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라는 뜻으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인간은 누구나 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언젠가 강남에 사는 한 직원의 말을 빌면 그곳의 일부 학부모들은 아이가 유치원 때부터 학원 선택이나 친구 관계를 비슷한 수준으로 그룹 지어 관리한다는 말을 하기에 흥미로웠다. 부모가 자녀에게 좀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하려는 마음은 알겠다. 하지만 그렇게 자라난 아이들이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주도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에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 부모들은 세상의 모든 것은 자기 생각대로 되어야 하고 그 속에 자녀의 삶도 포함된다고 여길 수도 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대학에 입학해서 수강신청을 부모가 대신하고 기업에 입사해도 부모가 인사부에 전화해서 자녀의 적성이 이러하니 특정 부서 배치를 요구하는 웃픈 얘기가 나오나 보다. 하지만 인생은 생각보다 길다. 사람마다 희로애락의 사건들은 닥치게 마련이고 마음의 근육에 따라 시련을 극복하는 힘도 달라진다.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아가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내가 누군가를 존경하거나 따르게 되면 그의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하지만 어느 수준이 되면 이제 그것을 벗어나야 한다. 로켓이 추진체를 1단, 2단 분리하면서 우주로 나아가듯 삶의 방편으로 쓴 가르침은 내가 나의 삶을 살기 위한 연료이지 그것에 종속되어 살게 아니다. 우리는 어떤 문제에 직면하면 누구의 문제인지 본능적으로 주변을 둘러본다. 하지만 이래서는 문제의 해결책이 안 나온다. 문제의 주체가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의 문제인가? 사실 이게 제일 중요하다. 어떤 문제든 내 문제로 인식될 때 비로소 해결책을 찾게 된다. 문제의 소유자를 구분하는 요긴한 방법이 있긴 하다. 그 문제로 인해 답답한 게 누구인지 찾는 것이다. 만일 그 문제로 내가 별로 답답할 게 없다면 그건 내 문제가 아닌 경우가 많다.


세상 모든 것이 마음에 안 드는 부정적 사고가 고착된 사람이 있다. 힘 있고 가진 자들은 죄다 도둑놈이라거나 드러난 결과에 꼭 흠집을 찾아내는 사람들이다. 그의 지적이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한참 비난하고 나면 마음 한 군데가 좀 공허해진다. 대부분 그들의 비난 대상은 그들이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에너지는 자기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갈 때 생겨나게 마련인데 내가 영향 줄 수 없는 것에 매달려 비난하고 불평하니 내 기분만 망치지 별로 달라질 게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 주위에는 늘 부정적 상황이나 사람들이 자석처럼 들러붙어 자신의 관점을 더욱 부정 편향으로 흐르게 한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여기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우리들은 참 귀한 생명을 얻어 살아가는 삶이다. 남의 복사판으로 사는 인생이 아닌 나만의 삶을 살아야 할 이유이다. 살불살조(殺佛殺祖),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이 말은 좋아 보이는 남의 삶을 따라가지 말고 너의 인생을 살아가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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