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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용범 Oct 24. 2022

635. 가상과 실재의 구분

어느 주말의 단상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기 싫은 것을 하지 않는 것이다.


반가운 전화

오전에 후배(중국 찻집 라오 상하이 대표)에게서 연락이 왔다. “선배님, 뭐 하세요? 오늘 신촌점에 와 있는데 나중에 놀러 오세요.”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였다. 논현동에 2호점을 낸 후로는 줄곧 그쪽에 가 있어 나도 찻집을 찾는 발길이 뜸해진 면이 있다. 한 번씩 어찌 지내는지 궁금했었는데 마침 잘 되었다 싶었다. 사실 일요일 오후 내내 시간을 잡아먹을 일정이 하나 있긴 했다. 매년 발간되는 대학원 문집 관련 편집회의가 예정되어 있어서다. 그해 졸업 기수가 주도하고 재학생들이 참여하는 작업인데 각자의 사정으로 일요일에 미팅 날짜가 잡혔었다. 마치는 대로 들르마는 약속을 하고는 광화문 편집회의에 갔다


참 못나 보이는 노인

길었던 편집회의를 마치니 늦은 오후가 되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신촌에 가려고 버스에 올랐다. 다소 복잡한 버스였는데 한 장면이 영 눈에 거슬린다. 아이를 데리고 오랜만에 나들이 나온 젊은 부부인데 아이가 잠들었는지 부축하는 엄마가 너무 힘들어 보였다. 그런데 그 앞에는 연세는 있지만 정정해 보이는 노인 한 분이 고개 숙인 채 뭔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상황이 저 정도면 그냥 자리 양보를 할 법도 한데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그런 아이와 엄마를 지켜보는 아빠의 모습도 안쓰러웠다. 나는 괜히 앉아있는 그 노인이 참 못나 보였다. 마침 좀 떨어진 곳에 사람이 내리는 것 같기에 행여 다른 사람이 앉을까 봐 좀 높은 톤으로 "아기 어머니, 저기 자리 났으니 어서 앉으세요!”라고 했다. 나의 그 소리에 아무도 앉을 생각을 못 했고 덕분에 자리에 앉은 아이는 이내 잠이 들었다. 부부는 그제야 안도의 표정을 짓는 모습이다. 내릴 즈음 그 엄마는 나에게 가벼운 목례를 건넸다. 누구나 노인은 되지만 주위를 배려하는 노인 되기는 어려운가 보다.  

미래의 비즈니스 모델은?

찻집에 들어서니 라오반(중국어로 사장을 뜻함)이 다판(차 테이블)에서 반가이 맞아준다. 좀 있으려니 차로 만난 벗이 오고 라오반과 셋이서 조촐한 다회가 열렸다. 항상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에 관심이 많은 후배가 재미난 비즈니스 모델이라며  ‘슈퍼워크’를 소개해 주었다. 블록체인 기반의 NFT가 부여된 가상의 신발을 앱상에 구매하고 직접 걷거나 달리기를 하면 가상화폐가 쌓이는 구조라고 했다. 신발이 비쌀수록 코인 채굴 시간이 늘어난다고 하는데 게임의 캐릭터 파워업 기능과 휴대폰의 GPS와 만보기 기능을 결합해서 만든 모델인가 보다. 자신은 신발 업그레이드를 계속해 벌써 실제로 400만 원짜리 신발이 되었다는데 놀라울 뿐이다. 덕분에 매일 운동을 하게 되었다니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나로서는 참 생경한 이야기다. 결국 가상화폐 투자인데 채굴을 컴퓨터가 아닌 사람이 걷거나 달리는 운동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신발은 거래도 된다고 했다. 메타버스, 아바타, NFT, 가상현실, 증강현실 등 이제 허상과 실체의 경계가 모호한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좀 단순하게 살고 싶은데 세상은 허상이 실체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방향으로 바뀌는 것 같다.

주말에 편집회의, 버스에서의 사건, 슈퍼워크의 가상 신발 등을 접하며 하루가 여러 일들로 꽉 찬 느낌이 든다. 집에 오니 아내는 알바하는 딸을 좀 데려오라고 한다. 다행히 쉬고 싶은 나는 실재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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