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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용범 Oct 26. 2022

637. 기차를 운전하는 작가

‘시베리아 시간여행’의 저자를 만나다

궁금했던 저자를 만나다

은퇴 후 계획 중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유럽으로 넘어가는 것이 있다. 6박 7일간을 기차에 꼬박 머물기는 지루하니 중간중간 내려 머물며 둘러보고 다시 출발할 생각이었다. 장장 9,288Km를 기차로 달리는 여정이다. 그러다 한 기관사가 쓴 ‘시베리아 시간 여행’’이라는 책을 만났다. 저자는 박흥수라는 분인데 겨울철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해 베를린까지 갔던 기행을 책으로 펴낸 것이다. 이미 철도 관련 두 번의 책을 냈던 분으로 기차를 좋아하는 덕업 일치의 기관사였다. 블라디보스토크, 우수리스크, 하바롭스크, 이르쿠츠크, 울란우데, 예카테린부르크, 노보시비리스크, 모스크바 등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중간 기착지를 거치며 자신의 느낌을 담담히 소개하는 글에 크게 매료되었었다. 기관사라는 직업과 노조 활동을 했다는 이력으로 보면 어느 정도 거칠 것 같은 이미지인데 그의 글에 나타난 섬세한 감성은 저자에 대한 궁금증을 일으켰다. 그러다 대륙 학교 12기 강의 프로그램에 그분의 이름이 보이기에 일찌감치 평일 저녁 일정에 담아 두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박흥수 기관사는 무척 온화한 모습이었다, 우선 들고 간 책에 저자의 사인을 받고 서로 명함을 교환했다. 그분은 주로 무궁화나 새마을호를 운전한다고 했다. 그런 그가 생소한 러시아어는 인사말과 숫자 정도만 익히고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대륙 여행을 했다는 게 대단해 보였다. 강의 중 인상 깊었던 것은 그가 수집한 1940년대 서울역 열차 시간표가 적힌 책자였다. 당시 일본에서 발행했는데 서울역에서 출발해 중국과 러시아를 거쳐 모스크바와 베를린까지 이어지는 열차시간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당시의 서울역은 국내선과 국제선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베를린 올림픽의 손기정 선수도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베를린까지 갔다고 한다. 손기정 선수의 목에 금메달을 걸어 준 이가 히틀러였다고 하니 그것도 흥미롭다. 지금도 대륙철도는 러시아와 중국, 몽고, 중앙아시아, 유럽까지 이어지지만 정작 우리는 분단의 현실 때문에 소외되어 있다. 40년대 일본은 한반도와 일본열도를 잇는 해저터널을 계획하고 있었고 그것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우리는 한국전쟁 후 대륙으로 가는 길은 단절되어 비행기가 아니면 외국에 갈 수 없는 섬나라가 되었다. 은퇴한 첫해에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대륙을 가로질러 유럽으로 들어간다는  계획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실현이 어렵게 되었다. 모두를 위한 평화로운 세상을 기대하지만 세계는 점점 폭력적으로 변하는 것 같아 우려된다.

한 수 배우다

강사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기관사라는 직업이니 다른 나라의 철도에 관심을 갖고 여행을 하는 것 까지는 이해가 된다. 그런데 책을 보면 상당한 인문학적 지식을 느낄 수 있고 책을 세 권이나 펴낸 것으로 보아 보이지 않는 어떤 활동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무어냐고 말이다. 그는 쑥스러워하며 도서관을 자주 간다고 했다. 기관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출퇴근이 일정하지 않고 낮 시간의 여유가 많은 편인데 그 시간엔 주로 도서관에  머문다고 했다. 역시 그랬구나 싶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같은 양이 주어지지만 활용하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그를 강연하고 책을 내는 특별한 기관사로 만든 이면에는 독서라는 자양분이 있었던 것이다. 사람은 세상에 난 이상 성장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란 사실을 다시 한 번확인했다. 세상에는 고수들이 많은 법이다. 역시 한 수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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