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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용범 Oct 27. 2022

638. 비슷한 인생살이

어느 장군의 전화

오전 무렵 반가운 전화가 왔다. 나는 장난삼아 약간 사극 톤의 목소리로 “장군, 어인 일이오?“라고 했다. 사실이 그랬다. 그는 현직 별을 달고 있는 장군이었기 때문이다. 계룡시에서 서울로 가는 길에 안부를 물을 겸 연락했다고 한다. 참 오랜만의 통화였다. 군 생활을 같이 했던 우리가 서로의 연락처를 다시 알게 된 건 최근의 일이었다. 우연히 그를 아는 동기가 연결해 준 덕분이다. 전화를 끊고 잠시 추억에 잠겼다.

소대장 시절 회상

ROTC를 마치고 소위 임관을 했던 나는 동해안의 해안 소대장으로 부임했었다. 그리고 한 달 후 육사를 졸업한 그가 옆의 소대에 배치되었다. 대학에서 후보생 교육은 받았지만 병사들을 직접 받아 소대를 이끄는 일은 처음인 나와 달리 4년간 육사를 다니며 내무 생활을 했던 그는 군 생활의 모든 것이 몸에 밴 듯 모든 것이 익숙해 보였다. 그는 여러모로 나와 다른 성향이었는데 내가 내성적이며 책 읽기를 즐긴 반면 그는 운동 좋아하고 활달한 성격이었다. 일요일만 되면 소대 대항 축구시합을 하자며 나를 찾아왔는데 소대원들도 소대장을 닮았는지 우리는 단 한 번도 그의 소대를 이긴 적이 없었다. 지는 것도 한두 번이지 매번 사정이 그러하니 나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그의 축구 제안을 거절했었다. 전역 후 취업을 고민해야 했던 나와 달리 그는 이미 군대라는 든든한 직장을 가진 사람이었다. 같은 군복을 입고 있었지만 나에게 군대는 잠시 머물다 가는 과정이었고 그에게는 평생의 직업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도 기억나는 건 내가 전역할 때 어두웠던 그의 표정이었다. 당시 그는 마음이 좀 복잡하다며 하지만 서로의 길이 다름을 실감한다는 말을 했던 것 같다. 그런 그가 마침내 장군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의 대화는 세월을 건너뛰어 그 시절 소대장으로 돌아가 있었다.

크게 다르지 않다

대화 중 서로의 은퇴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별을 단 사람도 은퇴 걱정을 하느냐고 물으니 오히려 별을 달았기에 더 갈 곳이 없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 이후 공직자는 퇴직 후 관련 산업 군에 바로 취업을 못하도록 했기에 자신도 그 적용을 받게 된다고 했다. 지금은 무척 화려한 사람이지만 지니고 있는 문제는 일반인인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군에서는 육사 출신이라도 장군의 부관직을 맡은 이들은 의무복무 후 전역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멀리서 볼 때는 별을 단 장군이 너무도 화려해 보였지만 가까이서 보면 일반인과 별반 다르지도 않아 군 생활 전체에 대한 회의로 이어지는가 보다. 인생 활동기의 사회적 지위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것과 같아 너무 높이 올라간 사람은 내려올 때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말이 있다. 인생의 사이클은 누구나 비슷한 모양이다. 익히 알려진 인생 평준화에 관한 유머를 내 나름대로 해석해 보았다.


* 40살은 학력의 평준화 :  좋은 대학을 나왔거나 아니거나 별 차이가 없다.(실제 직장 내 명문대 출신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오히려 강한 자기주장 때문에 함께 일하기에 불편한 경우가 많다.)

* 50살은 외모의 평준화 : 예쁘거나 아니거나 차이가 없다.(최근 중년의 아줌마나 할머니 역할로 나오는 여배우들의 옛 모습을 떠올려 보라.)

* 60살은 자식의 평준화 : 자식 잘 둔 사람이나 못 둔 사람이나 별 차이 없다.(어릴 때 공부 잘했던 자식 이야기인 것 같은데 이 나이가 되면 자식은 자식대로 먹고살기 바빠 부모와 별개의 인생을 살게된다.)  

* 70살은 배우자의 평준화 : 남편이 있으나 없으나 같다.(여자에겐 맞는 말이지만 남자는 아내가 필요하다. 그러니 남자도 스스로 생활할 수 있는 요리나 가사 활동을 배워두는 게 좋다)  

* 80살은 재산의 평준화 : 돈이 있으나 없으나 별 차이가 없다.(나이 팔십에 자기를 위해 돈으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글쎄, 장시간 비행도 어려우니 해외여행도 힘들테고 흥청망청 술집에 갈 것도 아니고 어쩌면 자신의 병원비 대는 정도가 아닐까 한다.)

* 90살은 죽음의 평준화 : 산에 누웠거나 집에 누웠거나 매 한 가지다.(자식마저 못 알아보는 치매 노인들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오랜만에 반가운 전화를 받고 생각이 여기까지 미쳤다. 은퇴를 앞둔 50대 중반의 남자에게 한 가지 덧붙이자면 올라갔던 사다리는 이제 내려와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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