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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용범 Nov 09. 2022

646. 헤밍웨이는 여행을 한 것일까?

여행하기 좋은 나이는 없다

현실적인 여행에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체력과 시간 그리고 돈이다. 그런 면에서 여행하기 좋은 나이는 없다고들 한다. 20대는 시간과 체력은 되지만 여행 갈 돈이 없다. 30-50대는 체력과 돈은 되지만 시간이 없다. 60대 이후는 시간과 돈은 있지만 여행을 갈만한 체력이 안 된다. 그래서 여행은 다리 떨릴 때 가지 말고 가슴 떨릴 때 가라고 했다. 여행 관련 유튜브를 자주 보는 편인데 지금껏 여행 갈 시간이 없었던 나에게는 일종의 대리 만족이었던 셈이다.


여행의 관점 변화

그런데 요즘 여행에 대한 나의 관점이 좀 바뀌고 있다. 많은 여행 유튜버들이 현지의 세세한 모습까지  보여준 덕에 이제 다른 나라의 이국적인 모습이 점점 시들해 가는 면도 있다. 현지의 명소나 시장을 돌고 식당에서 밥 먹으며 음식을 평하고 사람들과 잠시 소통하는 등의 모습을 보면 비록 가보지는 않았지만 사람 사는 모습이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이건 좀 슬픈 일이다. 여행에 대한 나의 열정이 조금씩 사라지는 증상이기 때문이다. 확실히 나이 들면서 여행에 대한 설렘이 예전만 못하긴 하다.


직장 생활하느라 여행을 많이 다닌 것도 아닌데 나는 왜 나라밖 여행조차도 점점 시큰둥해지는 걸까? 현지의 여행 프로그램이나 유튜브의 영향도 있겠고 좁은 비행기 안에서 긴 시간을 버티며 간 곳에서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상황들이 부담스러워진 면도 있다. 당연히 말도 안 통하고 음식이나 다른 생김새의 사람들과 보내야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주제가 있는 여행

이제 여행은 그냥 다녀왔다는 것만으로는 좀 부족한 면이 있다. 누군가 파리의 에펠탑을 보고 왔다,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를 만져 보았다,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에 다녀왔다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싶다. 워낙 눈에 익숙한 대상들이라 꼭 가서 볼 이유가 있나는 생각도 든다. 모나리자 그림을 한국에서 화보로 보나 루브르 박물관에서 실물로 보나 그림을 잘 모르는 나에게 뭐 그리 다를까도 싶다. 이제 그런 여행은 좀 식상하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주제가 있는 체류형 여행이었다. 비싼 여행경비 들였으니 지치도록 둘러보며 사진 찍어 남기기보다는 그냥 한자리에 오래 머물며 사람들과 교류하고 집필하는 여행을 꿈꾸어 본다.


‘노인과 바다’는 헤밍웨이가 쿠바의 작은 어촌 마을 코히마르에 머물면서 집필한 작품이다. 주인공은 그 지역에서 만나 오랜 낚시 친구가 된 선장이 모델이었다. 이런 작품은 한 지역을 스치듯 지나는 여행으로는 나올 수가 없을 것이다. 만일 100일 정도 머물며 글도 쓰고 사람들과 교류도 하며 지내는 것을 여행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런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걸 보면 확실히 나의 여행 취향이 변하긴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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