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용범 Dec 07. 2022

660. 잘 변하지 않는 입맛

나는 입맛이 참 토속적이다. 지난 주말 평소 먹고는 싶었지만 흔하지 않은 먹거리를 사러 아내와 청량리 농산물 시장에 갔다. 정말 오랜만에 가긴 했나 보다. 시장에 지붕 얹은 모습을 처음 봤으니 말이다. 지난 4월에 설치했다는데 그동안 그렇게 안 갔었나 싶었다. 제법 거리가 있는 곳이라 일부러 마음 내지 않으면 가기가 쉽지 않다. 그곳에서 나는 무엇을 샀을까? 바로 번데기다. 어릴 적부터 번데기를 참 좋아했다. 학교 통학길에 리어카에서 파는 구수한 번데기 냄새는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신문지를 돌돌 말아 감질나게 퍼주는 번데기는 당시에는 흔한 군것질거리였는데 이제는 보기 어려운 귀한 음식이 되었다. 그리고 자주 들르는 가게에서 오뎅과 진미채도 샀다. 오뎅은 일본 말이니 어묵이라 해야 한다지만 나는 오뎅이라고 해야 이 음식이 더 친근하다. 여기에 어리굴젓과 낙지 젓갈, 삭힌 고추 장아찌까지 장바구니에 담으니 어느덧 큰 부자가 된 것 같다.

나에겐 이런 반찬들이 최고의 밥반찬이다. 아내는 짜다고 타박하지만 내가 좋은 걸 어쩌랴.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하얀 쌀밥에 이들 반찬을 먹을 생각에 콧노래가 절로 났다. 먹는 걸로 치면 큰돈 들이지 않고도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조건인 셈이다. 어릴 적부터 소고기, 돼지고기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오죽했으면 어머님이 나에게 억지로 고기를 먹이려 했지만 내가 구역질에 토하기까지 하니 더 이상 강요하지 않으셨다. 이런 나를 두고 할머니는 전생에 스님이었나 보다며 혀를 차셨다. 그런데 입맛도 변하는지 사회생활을 하며 고기를 자연스레 먹게 되었다. 일단 양념된 불고기부터 시작해서 이제는 삼겹살에 소고기까지 나의 고기 먹거리 영역은 점점 확대되었다.

김치 한 가지만 있어도 잘 먹는다는 말이 있지만 이제는 옛말같다. 요즘 아이들이 먹는 것을 보면 우리가 잘 사는 게 맞는 것 같다. 오늘도 나는 어리굴젓에 고추 장아찌로 밥을 두 그릇이나 비웠지만 딸아이는 초밥을 먹겠다고 투정이다. 국회 공모전 준비하느라 체력 소모가 컸다며 그간 고생을 위로하는 차원에서   기어이 맛있는 걸 먹어야겠다고 했다. 주문도 전화 한 통이면 끝이다. 좀 있으려니 초밥이 배달되어 왔다. 내가 좋아하는 반찬은 집에서 나만 먹고 있다. 번데기, 오뎅, 삭힌 고추장아찌, 어리굴젓, 낙지 젓갈 등 누가 뭐래도 나에게는 왕후장상 같은 밥상을 한동안 먹을 수 있어 흐뭇할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659. 지금 이대로도 좋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