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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용범 Jan 12. 2023

680. 어느 은퇴자의 하루

회사에 다닐 때는 은퇴를 한 사람들은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막상 내가 그 상황에 처해보니 은퇴 백수도 나름 할 게 많음을 알게 된다. 회사에 나가지 않는 나의 하루를 살펴보았다.


*아침 5시에 일어나 블로그 포스팅을 작성하다.

*7시쯤 집을 나서서 산행을 한다. 쌓인 눈이 미끄러워 아이젠이 아쉬웠다. 봉수대 정상에 오르니 아침  해가 뜨기 시작한다. 아직 겨울이라 해 뜨는 시간이 좀 늦은 편이다. 그러고 보니 은퇴 후 일출은 처음 보는 것 같다.

*오전 9시, 식사를 하고는 집을 나섰다. 그냥 나섰다. 오늘은 어디로 갈 것인가? 정함이 없다. 점심은 후배와 명동에서 약속되어 있어 마음 닿는 대로 오전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보통 이럴 때면 갈 곳을 미리 정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편이다. 버스를 탈 즈음 오늘은 시청광장의 시민청에 있는 하늘카페에 가고 싶어졌다. 시청광장의 멋진 뷰가 보이는 유리건물인데 시청에서 운영하다 보니 가격이 착하다. 아메리카노 2,500원(솔직히 커피맛은 별로다 ^^;), 이곳은 회사에 근무할 때는 오기 힘든 곳이다. 저녁 6시까지만 운영해서다. 백수는 이런 공공재의 호사도 맘껏 누릴 수 있구나 싶다.

*11:30. 행안부에 근무하는 후배를 만나러 간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후배인데 최근 페이스북을 재개하고서 연락이 닿았다. 근무지가 서울중앙우체국 건물인데 명동 브이(V) 자 모양의 바로 그 건물이다. 함께 점심을 먹고는 커피를 들고 건물 내부 10층 휴게실에서 외부 경치를 감상한다. 근황 이야기를 나누는데 둘의 공통점은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는 것이다.

*오후 1시. 후배와 헤어지고 건물을 벗어나며 문득 재미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평일 낮시간에 서울 명동에서 영화를 한 편 보는 것이다. 더구나 나에게는 영화를 무료로 볼 수 있는 휴대폰 요금제가 있었다. 평일 오후 백화점이나 영화관 분위기는 어떨까? 그냥 궁금했다. 조금 걸었다. 백화점은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생각 이상으로 한산했다. 누군가는 지금쯤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잔뜩 받고 있다 생각하니 묘하게 짜릿했다. 영화는 ‘스위치’라는 코미디물과 ‘영웅’이라는 안중근 일대기 중 고민하다 ‘영웅’을 선택했다. 하지만 러닝타임 2/3 정도 지날 즈음 지루함을 느꼈다. 이제 영화관에서 영화를 봐도 몰입이 잘 안 되는데 한 편의 영화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롤러코스트가 점점 부담스러워지는 것 같다.

*저녁 6시. 예전 함께 했던 지점장과의 저녁 약속이 있었다. 지금은 벤처 캐피탈사의 공동대표인데 사업을 꽤나 하는 것 같다. 별로 해준 것도 없는데 은퇴했다고 잊지 않고 연락을 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50-60대의 자아실현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플랫폼 사업 전망에 대해 한참 동안 열을 내었다.


*저녁 9시,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의 잔소리는 덤이다.    


아직은 은퇴 백수로 하루를 보내는 게 재미가 있다. 재직시절 근무 중에는 못했던 것들을 경험하고 있어서다. 그동안 회사 안에서 왔다 갔다 할 때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었는지 몸소 체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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