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경 고속버스를 탄 단상
어제 저녁 창원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거의 다섯 시간만에 서울로 올라왔다. 설날 귀경치고는 양호한 편이었다. 승용차들은 밀려있지만 전용차로로 달리는 고속버스는 어느 정도 시간은 맞추어 준다. 버스 안에서 도로에 거의 멈춰선 승용차를 보는 느낌도 나쁘지 않았는데 속도에 대한 비교우위의 감정때문이다. 이렇듯 우리는 남들보다 더 빨리 무언가를 이룬다는 것에 만족감을 느낀다. 고속버스는 버스 전용차로를 정말 열심히 달렸다.
최저기온 영하 17도. 밖에 나가고픈 생각을 접게하는 날씨였다. 혼자 집에 있었다. 아주 단순한 생활로 하루를 보냈다. 먹고 자고, 또 먹고 자고 이것이 백수의 하루구나 싶다. 4인 가족이 이렇듯 흩어져 지내기도 오랜만이다. 아내는 친정에 좀 더 머물고, 큰 딸은 두 달간 유럽에 가 있고, 시험이 코앞인 작은 딸은 아침 일찍 스터디 카페에 데려다 주었다. 나도 나갈까 하다가 날씨도 추운데 조용한 집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먹거리가 문제이긴 한데 설겆이가 귀찮아 가장 간단한 볶음밥에 밑반찬으로 해결하고 만다. 그나마 간단한 요리라도 할 수 있어 다행이다. 가장 릴렉스한 상태로 하루종일 집에서 보내는 일도 만만치는 않다. 할 일이 없지는 않았다. 다만 오늘까지는 설 연휴의 빨간 날이니 하기 싫을 뿐이다.
호스피스 의사였던 김여환 님의 대담 내용을 보았다. 질문자가 “인생의 끝은 어차피 정해져 있는데 왜 열심히 살아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답변이 재미있다. “그건 내가 만드는 거다. 사람은 열심히 할 여건에서는 열심히 하게 되어 있다. 열심히 살고 안 살고는 비교의 문제가 아니다. 열심히 살고 싶으면 열심히 살고, 안 그러고 싶으면 안 그래도 된다. 열심히 산 인생이 좋은 인생이고 안 그랬던 인생은 낙제 인생이라 할 수도 없다. 다만 사람에 대한 공감의 감성이 있으면 좋겠다.”
요즘은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것에서 한 발 빼게 된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은퇴를 맞으면서 특별히 부러운 대상이 없어서인 것 같다. 누군가 부러운 대상이 있어야 그가 가진 것을 추구할 것인데 그런게 없으니 열심히라는 것에서 조금씩 멀어지는 것 같다. 높은 지위나 많이 가진 사람들을 보는 마음도 달라졌는데 부러움보다는 스트레스 많이 받겠다는 연민도 없지 않다. ‘지금 이대로도 좋다’는 마음이 있으니 열심히 보다는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만큼 한다‘는 마음이 크다. 내가 버스 전용차로에 오르지 않았는데 옆의 버스가 씽씽 달리는 것을 보며 마음 상할 이유는 없다. 서로 다른 길이기 때문이다. 은퇴가 좋은 이유는 해야 할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의 비중을 늘릴 수 있는 것도 있다. 그리고 나머지 해야 할 일도 내 스케줄 대로 맞출 수 있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