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대학에 교수로 재직 중인 친구를 만났다. 나름 자신에게 철저했던 사람이다. 우리는 같은 나이에 과장 보임을 같은 곳에 받아 꽤나 친하게 지냈던 사이였다. 그 후 그는 석사, 박사를 재직 중에 취득하여 회사가 소유한 대학의 교수로 임용되었다. 중국어는 언제 또 공부했는지 중국 파견근무도 했던 친구였다. 대학 교수 자리는 많은 사람들이 가고 싶은 보직이지만 준비된 사람만이 갈 수 있는 귀한 자리이다. 그의 방에서 차 한 잔을 하며 그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결정적인 계기는 직장 내 승진경쟁이 싫었고 금융이 적성에 안 맞더라는 것이었다. 대부분은 적성에 안 맞아도 그럭저럭 맞춰가며 사는 게 직장생활인데 그는 철저한 준비로 귀한 기회를 잡은 경우였다.
직장 내 승진 경쟁이 싫었다는 말에 공감이 된다. 승진은 상사가 시켜주는 것이다. 자리는 한정되어 있고 승진 대상이 여럿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상사에게 친근한 직원이 유리하다. 이 경우 상사의 눈에 맞추기보다 자신의 색을 내세우는 사람은 그의 능력을 알아주는 상사에게는 발탁되지만 대부분은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내가 볼 때 그는 예스와 노가 분명한 성격으로 상사의 입장에서는 다소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자신의 성향을 알았던 친구는 그래서 대안을 생각했나 보다.
세상의 보편적인 삶은 어느 정도 답이 정해져 있다. “더 빨리, 더 높이, 더 많이”가 그것이다. 여기서 경쟁이 생긴다. 하지만 이런 경쟁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자기의 길을 뚜벅이처럼 가는 사람들도 있다. 주변에선 뭐 그리 잘 났냐고 쑥덕거리기도 한다. 그래도 개의치 않고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들인데 보편적인 사람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대표적인 경우가 있다. 조선의 이순신과 소련의 주코프 장군이다. 조선의 이순신은 모든 백성들의 존경을 받던 임진왜란의 영웅이지만 당대에는 선조의 질투와 간신들의 모함으로 온갖 고초를 겪은 분이다. 역사적으로 이름은 남을지언정 살아생전 부귀영화를 누린 경우는 아니었다.
주코프 장군은 생소할 수 있지만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주역이다. 2차 세계대전의 명장들은 아이젠하워, 맥아더, 몽고메리, 패턴 등을 떠올리지만 사실 유럽 전선은 소련의 주코프 장군을 빼놓고는 논할 수 없다. 그는 유럽에서 독일에게 실질적인 패배를 안겨주어 베를린을 함락한 주역이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자 그는 당시의 지배자 스탈린으로 부터 철저히 배척을 당한다. 그의 시련은 후임자 후루시쵸프에게서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의 어느 지배자가 자기 보다 인기 있는 아랫사람을 좋아할 리 있겠는가? 지배자의 권력을 유지하는데 위협으로 간주할 만하다. 후대는 그를 가리켜 ‘군왕이 될 수 있었지만 군신으로 남은 자’라고 부른다.
승진 경쟁이 싫었다는 말에 너무 나간 것 같지만 예나 지금이나 세상사가 별반 다르지 않다. 능력위주의 발탁이라고 하지만 보이지 않는 전제 조건이 있다. 단, 나에게 복종하는 것을 전제로이다. 뛰어난 아랫사람을 두려면 상사도 그를 품을 수 있는 넉넉한 배포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이 붐비는 하향 평준화된 곳에서 나르시시즘에 빠져 생활할 것이다. 개인에게는 괜찮은 선택이지만 전체로 봐선 마이너스인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