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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7. 출장지에서의 단상

by 장용범

대구를 거쳐 안동에 왔다. 3월부터 시작될 본격적인 출장에 앞서 사전 오리엔테이션을 겸한 현장 방문이다. 참 오랜만의 출장이다. 나를 안내하는 선배님은 현장 방문 시 챙겨야 할 것 등 세세한 부문을 일러 주셨다. 우리는 알고 지낸 지 10년이 넘은 인연이다. 사업부장 시절 부서 직원으로 근무하셨지만 연배가 위여서 한 해 먼저 은퇴하신 분이다. 이제 나도 은퇴하니 우리는 같은 퇴직 동인이 되었고 그분은 한 해 먼저 이 일을 시작한 선배님이 되셨다. 하지만 어색하거나 불편하진 않다. 재직 시절부터 서로에 대한 존중을 표했고 지금도 그런 관계로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고 있어서다. 게다가 대구와 경북 사무소장들은 예전부터 아는 사이들이라 오랜만의 만남이 반가웠다.

Back To The Basic.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뜻이지만 인생을 이야기할 때 적절한 표현 같다. 우리는 눈도 못 뜨는 어린아이로 태어나지만 노인이 되면 하는 짓이 다시 어린애같이 변해간다. 직장에 입사해도 언젠가는 입사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고, 결혼을 해도 언제 어떤 형태로든 혼자 남고 만다. 어쩌면 세상의 질서를 도형으로 표시하면 크고 작은 원(圓) 이지 않을까 싶다. 시작과 끝은 언제나 비슷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니 그렇다는 얘기다.

대구에서 안동으로 오는 길 선배님은 앞일을 미리 걱정하신다. 계약직이라 내년에는 관두어야 하는데 아직 아이들이 대학생이라 가장의 책임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씀이셨다. 사려 깊고 섬세하신 성품이라 이해는 되었지만 내일 일도 모르는 게 인생인데 일 년 후의 일을 벌써 걱정하느냐며 핀잔을 주었다. 엄연한 팩트지만 우리는 종종 이 사실을 잊고 지낸다. 사람들이 하는 가장 큰 착각이 미래를 지금의 지식이나 경험의 연장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와 우크라이나 전쟁, 최근의 튀르키에와 시리아 지진에서 보듯 정말 알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앞날이다.

과거를 생각하면 후회나 추억이고,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과 걱정, 기대 같은 감정이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내가 머물 곳이 아니다. 내가 살아가는 유일한 시간은 지금, 여기이기 때문이다. 생각에는 두 가지 속성이 있다. 하나는 늘 어딘가에 가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떤 생각을 자주 하면 그곳으로 길이 난다는 것이다. 생각이 과거나 미래에 자주 가 있는 것은 좋지 못하다. 몸은 현재에 있으면서 마음은 엉뚱한 곳에 가 있기 때문이다. 이게 심해지면 정신 상의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불교에서는 이렇듯 생각이 과거나 미래에 가 있는 상태를 경계하고 스스로 알아차리기를 권한다. 지나간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러니 나는 어디에 머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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