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정표를 보며 ’ 이건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공란 없이 채워지는 일정표를 보며 별로 남는 것 없이 부산하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그래서 조정을 좀 하기로 했다. 경영에서의 자원은 크게 돈과 사람, 시간 세 가지이다. 그리고 이들은 서로 호환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방법이 고속버스로 가면 네 시간이지만 KTX로 가면 세 시간이다. 시간이 급한 사람은 버스보다 기차를 탈 것이고 이는 한 시간을 돈으로 사는 셈이다. 만일 두 사람이 다섯 시간 동안 할 일을 혼자서 열 시간에 걸쳐했다면 사람을 덜 고용해 비용을 아낀 것이다.
은퇴 후 생각했던 나의 생활은 여유였다. 물론 현직에 비해 분명 여유로운 것은 사실이나 여기저기 관심거리가 많다 보니 일정이 제법 빡빡하다. 여기에 공간을 달리하는 출장까지 다니다 보니 더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일상에 대한 배분에 전환이 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은 시간과 사람, 돈에 대한 비율을 5:3:2로 배정하는 것이다. 돈 버는 일에 20%는 비중이 너무 낮다고도 볼 수 있으나 50대 후반의 나이는 애쓴다고 돈을 버는 시기가 아니기 때문에 이를 고려한 것이다. 그럴 바엔 괜히 헛심 빼지 말고 소비를 절제하고 그 시간에 여유를 가지는 편이 나을 것 같다. 그래도 이 나이에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마산에는 ’ 문신 미술관‘이라는 곳이 있다. 조각가 문신의 작품만을 전시한 전문 미술관이다. 마산 앞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미술관은 그 자체가 작품이기도 한데 조각가 문신이 직접 조성한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문신은 일본 유학당시 아르바이트 하며 고향에 돈을 부쳤다는데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어렵게 마련한 돈을 차마 쓸 수 없어 마산의 무학산 자락에 땅을 조금씩 사 모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아들은 프랑스 유학까지 마치고 이름난 조각가가 되었고 중년의 나이에 영구 귀국을 하여 아버지가 마련한 땅에 자신의 미술관을 지은 것이다. 건축 전공도 아닌 사람이 직접 설계도 하고 돌을 잘라 붙이며 이웃 주민들과 함께 14년에 걸쳐지었다고 한다. 그의 작품들도 훌륭하지만 그가 미술관을 건립한 일화가 더 끌린다. 그는 인생 후반부를 자신의 이름을 건 전시공간 하나 짓는 것으로 마무리 지은 것이다.
조각가 문신이 자신의 건축물을 짓기 시작한 때가 지금의 내 나이쯤 되었을 때이다. 한 가지 일을 14년간 지속할 수 있다는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달리 보면 그런 일거리가 있었다는 게 말년 복이라고도 여겨진다. 그는 건축물을 완공하고 이듬해 72세의 나이로 작고했다. 시간과 사람, 돈에 대한 일상 배분을 재조정하기로 한 나는 그의 묘비명에 적혀있는 이 문구가 좋은 지침이 되어 주는 것 같다.
“나는 노예처럼 작업하고, 나는 서민과 함께 생활하며, 나는 신처럼 창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