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돌아볼 나이로는 좀 이른 감이 있지만 그래도 한 번 돌아보면 나의 지난 삶은 어떤 큰 흐름에 내맡겨져 둥실둥실 떠내려온 감이 있다. 어떤 일은 아무리 애를 써도 되지 않았고 또 어떤 일은 그냥 나에게 다가왔다는 말이 맞을 정도로 수월했다. 그만큼 우연성이 깊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Now and Here, 지금 여기의 내 삶에 진행되고 있는 세 가지 우연을 꼽아보자.
첫째, 은퇴 후에도 일을 계속하게 된 우연
오랜 직장 생활이었고 많이 지치기도 해서 그냥 쉬고 싶다는 생각에 일에 대한 미련이 없던 시기였다. 그날은 평소 호형호제하며 지내는 후배들과 국밥 한 그릇 먹고는 겨울 볕을 쬐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때 한 아우가 툭 던지듯 건넨 말이 “형님, 은퇴하고 바닷가 보이는 곳에서 글 쓰시겠다면서요. 강원도와 제주도 지역 계약직 하시면 되겠네. 돈 벌면서 글도 쓰면 좋잖아요”라는 말에 ‘어, 그러네’로 수용한 게 지금의 일이다.
둘째, 34년 만에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는 우연
대학을 졸업하고 부모님으로부터 독립되었다. 그리고 34년이 흘렀다. 그간 나도 가정을 이루었고 내 생활에 바빠 명절이나 생신 등 특별한 날에만 찾아뵙는 정도였다. 그런데 은퇴 후 내가 맡은 지역으로 부산, 경남이 배정되었다. 당초 강원지역의 지점 수가 턱없이 부족했던 이유였다. 내 뜻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부모님과 생활하며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셋째, 작가가 되고 대륙 모임에서 활동하는 우연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의 저자 김민식 PD의 교보문고 공개강의를 신청했었다. 그는 본인의 경험담이라며 “여러분, 작가 되기가 가장 쉽습니다. 블로그에 꾸준히 글을 써서 올리기만 하면 됩니다.”라는 말에 ‘어, 그거 말 되네’가 출발이었다. 그 한 마디가 아니었다면 나는 작가라는 직업은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유라시아 대륙 관련 모임은 더한 우연이었다. 서점에 들렀다가 러시아를 다룬 ‘유라시아 견문록’을 접하고는 출판사에 연락을 해 저자를 만나고 싶으니 연락처 달라고 한 데서 시작되었다. 저자인 이병한 교수는 자신의 강의가 있는 ‘대륙 학교’를 소개해 주었고, 나는 망설임 없이 과정에 입학했다. 그리고 그때의 인연들이 점점 이어져 지금은 관련 단체 실무를 맡고 있다.
법륜 스님이 하신 말씀 중에 거꾸로 바가지 예화가 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씨에 바가지로 물을 받는다고 해도 한 방울을 못 받는 사람이 있다. 바가지를 거꾸로 들고 있는 사람이다.’ 나에게 기적을 일으킬 씨앗은 지금도 계속 일어나고 있는지 모른다. 다만 내가 바가지를 바로 들고 수용할 준비가 되었는가의 문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