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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뭐가 문제야?

by 장용범

요즘 나의 문제는 무엇일까? 일상에서 뭔가를 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도 아닌 좀 특별한 느낌이 들어 나의 문제를 신(神)과의 대화체로 구성해 보았다.

*신: 뭐가 문제야?


*나: 별로 문제 될 게 없는데요.


*신: 그럼 된 거 아니야? 그런데 왜 그래?


*나: 그게 이상해서요. 지금껏 이런 적이 없었거든요. 늘 이런저런 문제를 안고 살아왔는데 갑자기 문제가 사라질 리가 없잖아요. 살아가는 자체를 고(苦)라고 하고, 세상을 고해(苦海)라고 하는데 사람이 살아가는데 어떻게 문제가 없을 수 있어요.


*신: 아니지. 사실상 문제가 없다. 괴로울 게 없다는 것을 알려준 분도 있었어. 2,500년 전의 붓다를 말하는 거야.


*나: 제가 붓다는 아니잖아요.


*신: 모든 것에는 불성이 깃들어 있다 하니 네가 붓다가 아니라는 것도 말이 안 되지.


*나: 됐고요. 제 문제를 좀 찾아 주세요.

*신: 남들은 이런저런 문제를 들고 와 난린데 문제없다면서 문제를 찾아달라는 것은 뭔 조화냐? 그러니까 문제가 없는 게 문제란 말인 거야?


*나: 그런 셈이죠. 뭐.


*신: 그럼 네 문제를 한 번 찾아보자. 보통 대한민국 50대들이 문제 삼고 있는 것들을 중심으로 말이지. 첫 번째, 은퇴는 했지만 불안하지 않니? 아직 아이들이 취업이나 결혼도 안 했고, 살아계신 부모님이 언제 건강상 문제가 일어날지도 모르는 상황이고,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앞으로 네 건강이나 부족한 돈 문제 등에서 이런저런 걱정들이 있을 텐데?


*나: 그게 말이죠. 처음에는 저도 그랬어요. 그런데 자동차 사고로 죽음의 문턱까지 한 번 가보니 그게 큰 문제가 아니더란 말이죠. ‘단, 7초 안에 모든 것이 끝날 수 있는 게 인생인데’라는 생각이 드니 그냥 살아있는 자체가 감사하더라고요. 아무리 큰 문제라도 자신의 죽음보다 더 큰 문제가 있을까요?

*신: 그렇긴 하지. 살아있다는 자체로 감사하다는 입장이라면야. 그래도 아이들이나 부모에 대한 걱정은 되지 않나?


*나: 사실, 엄밀히 따져보면 그건 제 문제가 아닌 거죠. 아이들의 취업과 결혼을 제가 어쩔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저 잘 되었으면 하는 부모의 마음인 거죠. 부모님의 건강도 그래요. 돌아가시는 날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셨으면 하지만 부모님의 건강에 대해 제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요? 그저 아이들이 지금껏 바르게 잘 자라주어 고맙고, 부모님도 스스로 관리 잘 하셔서 건강하신 게 늘 감사할 따름이죠.


*신: 틀린 말은 아니지. 문제의 소유자에 대한 명확한 구분을 하고 있다는 게 특이하긴 하네. 그러면 100세 인생이라 하는데 은퇴 후 들어갈 돈 문제는 걱정이 될 텐데?


*나: 생활인으로 살아가면서 돈 문제가 없는 사람은 없겠죠.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우리 사회에서 내일모레 60세를 바라보는 남자에게 뭐 그리 대단한 돈벌이가 있을까요? 오히려 있다고 찾아오는 사람을 의심해야죠. 사기꾼일 테니까. 그러니 가진 범위에서 소박하고 검소하게 사는 수밖에 없는 거죠. 많이 가지면 좋겠지만 안 되는 걸 어떡하겠어요. 그게 걱정한다고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잖아요.


*신: 그것도 그러네. ‘걱정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할 게 없겠네’라는 입장이란 말이지. 알겠네. 그러면 혹시 소외감이나 사회적 단절 같은 걸 느끼진 않나? 오랜 직장 생활을 했고 대부분 직장 내 시절 인연들이라 그들이 은퇴한 당신을 찾을 리가 없잖아.

*나: 그렇죠. 그들이 날 찾을 리 없죠. 사실상 기대도 안 했어요. 그런데도 챙겨주고 찾아주면 감사한 일이에요. 그런데 그 이면에는 제가 혼자서도 잘 논다는 장점이 있는 것 같아요. 글도 쓰고, 책도 읽고 자잔한 여행도 자주 다니죠. 관심사를 좇아 은퇴 전에 활동하던 커뮤니티도 여럿 있어 사실상 그곳 행사나 모임도 제법 있는 편이에요. 저의 직장 인연들은 정말 호형호제하는 몇몇들과 만나는 수준이죠. 그들과의 자리는 늘 화기애애해요. 서로의 마음이 통해 만나는 사이라 그런가 봐요.

*신: 네 말을 듣자 하니 별문제가 없긴 하네. 문제가 없는 조건은 아니지만 그것들을 수용하는 네 마음이 지금에 만족하고 감사하며 딱히 문제로 삼지 않으니 그걸 문제라 할 순 없지 않겠나? 내가 보기에 자네는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안되는 건 어쩔 수 없지’라며 툴툴 털고 다음 발걸음을 옮기는구먼. 괜찮은 자세야.


*나: 그렇죠. 제가 어떻게 세상 일을 제 마음대로 하겠어요.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안되면 할 수 없는 거죠. 살아보니 일이란 되어가는 거지, 내가 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그 안에서 내 역할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수준 정도죠.


*신: 인간관계는 어때? 다른 사람들은 누구누구 때문에 못 살겠다며 갈등하는 경우도 많던데.


*나: 그게 말이죠. 그냥 있는 그대로 보아주는 것으로 했어요. 다르구나 정도로. 남의 인생에 내가 개입하는 것도 어불성설이고 그냥 다르네, 다르구나로 보고 말고 그냥 고개 돌려 나는 내 길을 가는 거죠. 딱히 사람에 대해 기대를 않으니 실망도 없는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소노 아야코의 말이 생각나네요. 그녀는 성악설을 믿는데요. 그래야 인간을 바라보는 마음이 편하다네요. 즉, 인간에 대해 별로 기대하는 바가 없으니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부정적인 사건들을 보더라도 그럴 수도 있다로 받아들여지고 가끔 좋은 일들을 보면 인간이 어떻게 저리 훌륭할 수 있지 라며 감동이 배가 된다더군요.


*신: 아무튼 지금으로서는 별문제가 없는 것 같아. 문제의 조건이 없는 건 아니지만 본인이 문제 삼지 않으니 문제라 할 수도 없는 거지. 안 그래?


*나: 그, 그런가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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