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독대라는 독서모임에 갔었다. 벌써 38차월로 이어지는 모임이다. 대륙학교를 졸업한 동기들끼리 책 좀 읽자는 차원에서 시작한 모임이 제법 길게 이어지고 있다. 독서모임이라지만 와인같은 간단한 음주도 곁들이다 보니 진행이 그리 딱딱하지는 않다. 때로는 독서 모임이 주제를 벗어나 산으로 가기도 하는데 오히려 그런 돌발적 이야기들이 더 재미나다. 이번 선정도서는 '타인의 영향력'이라는 책이었지만 이름만 그럴듯하고 논문 같은 딱딱한 책이라 모두들 읽는데 힘들었다는 푸념을 했다. 그래서인지 이번 모임도 책 의 내용보다는 최근 러시아와 중국 관련 비즈니스와 비자 발급 경험을 했던 J감독님의 사연이 더 흥미로웠다.
J 감독은 본업이 영상 감독이기도 하지만 고려인들의 삶과 유라시아 대륙에 남다른 관심이 있으신 분이다. 관심만 있는 게 아니라 실제로 사업도 하시는데 블라디보스톡에 제법 큰 치킨매장을 운영하고 계시다. 나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감독님의 사업이 궁금해 여쭈니 어쩔수 없이 직원으로 일하던 고려인에게 넘겼다고 하셨다. 현지 중심가에서 10년을 운영했던 사업체이니 그 마음이 오죽 쓰라렸을까. 그것도 나중에 이익이 나면 받는다는 조건이니 실제로는 거저 넘긴 셈이나 다름없다. 그래도 그 곳에 근무했던 직원에게 넘긴 것이라 조금은 믿음이 간다며 애써 위안하시는 모습이다. 현지에서 여행사를 제법 크게 운영하던 L 대표는 업의 특성상 아무것도 못 건졌다는 이야기도 들은터라 그나마 좀 나은 편인가도 싶다. 한 때 두 시간이면 닿는 유럽이라며 관광객들도 제법 찾던 곳이었는데 불과 몇 년 사이에 상황이 이렇게 바뀌다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감독님은 6월달에 중국 연길을 거쳐 백두산에 들어가려고 비자를 신청했는데 코로나 이전과 상황이 너무 달라졌다고 한다. 부모님 인적사항, 군 입대와 제대 날짜, 이전에 중국에 들어갔다면 어떤 사유로 어디에 얼마나 머물렀는지도 적어라 하니 중국의 한국에 대한 적대감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것 같다고 한다.
정권이 바뀐 후 가장 달라진 것이 한국의 대외정책이다. 중국이나 러시아를 상대로 사업하던 기업들이 과연 버틸 수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한반도에 70년대와 같은 군사적 대치국면 양상도 우려된다. 우리가 지구 반대편 우크라이나와 무슨 관계가 있다고 그 나라의 전쟁으로 우리가 불안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동북아에서 미국과 일본, 중국과 러시아의 전쟁터는 한반도이다. 이 땅에서 또 다시 남북한이 강대국의 대리전을 치러야 한다면 우리로서는 너무도 큰 비극이다. 한반도 유사시에 자위대를 파견하겠다는 일본이나 서해상에서 군사훈련을 하는 중국, 북한과 더 욱 긴밀해진 러시아의 틈바구니에서 우리는 지금 너무도 평온한 것 같다. 군사비에 천 조를 쓴다는 미국을 믿고 있어서일까? 우크라이나처럼 우리를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이 땅에 포탄을 쏟아 붓는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