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투 더 베이직.. ‘처음부터 다시’라는 말이다. 직장 후배를 만났다. 그는 아버님의 치매를 보면서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기억이 사라지는 삶을 과연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버님의 치매 정도가 꽤나 심해 10분 전의 일도 잘 기억 못하시나 보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나중에 자신의 삶도 별반 다르지 않겠다 여기니 요즘 우울감마저 드는가 보다. 나의 부모님이 건강하시니 치매 노인을 둔 가족들의 고통은 잘 모른다. 경험하지 못한 일을 이러쿵저러쿵 이야기 하는 것도 주제넘는 일이라 말을 아꼈지만 대략 다음과 같은 이야기는 나누었다.
정작 치매 노인 스스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어쩌면 남들이 모르는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를 괴롭히는 많은 문제들이 사실은 현재의 일이라기 보다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이 대부분인데 적어도 그런 일은 없으실 것 같다. 다만 그 모습을 지켜보는 가족들이 힘든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치매노인의 현재 모습 그대로만 보면 되는데 자꾸 이전의 모습과 비교를 하니 힘든 것 아니겠는가.
인생 80을 넘기면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 퇴행을 겪게된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 정신활동을 한다는 것인데 10분 전의 일도 기억 못하고 육체의 안위에만 모든 관심이 머물러 있다면 인간 존재에 대해 회의가 들만도 하다. 치매환자를 보면 저렇게는 안 되길 바라지만 나이가 들면 또 그렇게 흘러간다. 그게 자연의 순리다. 평생을 경건하게 살아온 종교인들도 치매에 걸리는 걸 보면 이것은 거부한다고 되는 문제도 아닌 것 같다. 정말 운좋게 벗어났다면 감사할 일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마음이라도 좀 달리 가져야겠다. 나에게 치매가 올지 안 올지는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멀쩡한 상태라는 것이다. 우리는 확실한 것을 누리고 살 필요가 있다.
기억이 사라진 노인의 모습, 금방 먹고 돌아서면 또 먹으려는 식탐을 보인다거나 사랑하는 배우자나 자식들에게 누구냐고 묻기도 한다. 평생을 품위있게 살던 사람이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며 싸우는 모습도 생경하지만 이런 모습이 우리의 미래일수도 있다는 게 더 불안하다. 그렇다. 우리는 먼 훗날 치매노인이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노인과 지금의 나는 동일인이라는 착각 때문에 불안한 것이다. 하지만 안심하시라. 그 사람은 지금의 내가 아니다. 10살 때와 지금의 나는 과연 동일인인가? 다만 같다는 기억이 남아 있을 뿐 동일 인물은 아니다. 육체적으로는 몸의 모든 세포가 다 바뀌었고 지식과 사고의 수준도 다르다. 주변 환경과 인연들도 달라졌다. 마찬가지로 훗날 내가 치매에 걸린 노인이 되었을지라도 그는 지금의 나와 다르다고 여기자. 나는 오직 지금 이 순간만 존재할 뿐이다. 여기에 약간의 위안거리는 있다. 연령별 치매에 걸릴 확률을 살펴보았다. 80세 20%, 85세 37%, 90세 47%이다. 적어도 확률적으로는 제 정신으로 살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