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그치지 않는 빗줄기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인간이 제 아무리 잘났다고 교만을 떨어본들 참으로 한계적 존재라는 것이다. 세상의 중심에 인간이 있다고 하지만 정작 세상은 이러쿵저러쿵 말이 없다. 그냥 우리 스스로가 짓는 희망사항일 뿐이다. 이처럼 인간의 한계상황을 일찌감치 통찰하여 사유의 체계로 정립한 이가 붓다이다. 붓다의 관점에서는 지금의 물난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Dukkah는 산스크리트어로 인간을 둘러싼 한계상황을 일컫는다. 이 단어가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중국으로 건너오면서 괴로울 고(苦)로 번역되었다고 한다. 세상 모든 것을 고통으로 본다는 일체개고(一切皆苦)는 그런 의미에서 번역의 오류일지도 모른다. 정확한 뜻은 인간을 둘러싼 환경들 중에는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현실적 의미로 받아들여야 겠다. 그런 면에서 지금의 물난리는 분명 Dukkha이다. 이 상황에서 왜 이리 비가 많이 오느냐고 하늘을 탓한다거나 기후변화를 일으킨 인간의 탐욕이 어쩌구저쩌구 하는 것은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라는 현실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 자동차에 물이 차오르면 차를 버리고 도망가는게 먼저이지 다른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Anicca 이는 세상의 모든 일은 영원한 게 없다는 뜻이다. 중국에서는 제행무상(諸行無常)으로 번역되었다. 인생무상이라 하여 덧없음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무상(無常)을 영어로 의역하면 Everything is Changed 가 된다. 왠지 그럴듯 하다. 역시 우리에겐 영어가 좀 세련되어 보여선가? 하지만 이건 희망적인 이야기다. 저 빗줄기도 언젠가는 그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달리보면 아무리 지금 잘 나가고 있어도 영원하지 않으니 너무 들뜨지 말라는 경계의 의미도 된다.
중국의 불경에는 제법무아로 번역되어 나라고 하는 실체가 없다는 뜻이 되었다. 그러니 오해가 생긴다. 나라는 존재가 분명 있는데 왜 없다고 하느냐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 모든 것은 연결에 연결을 더하여 나타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니 고정된 실체랄 게 없다는 말이다. 차를 타면 승객, 집에서는 남편이자 아빠, 회사서는 직원이 된다. 어느 것 하나 고정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다. Anicca가 시간의 개념에서 바라본 것이라면 Anattā는 나를 포함해서 공간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에 대한 언급이다. 흔히 말하는 인연따라 왔다가 인연이 다하면 사라진다는 것이다. 지금은 눈앞에 세찬비가 내리지만 해가 비치는 풍경도 있을 것이다.
Dukkha, Anicca, Anattā 는 붓다가 세상을 통찰한 관점이다. 불교에서는 이를두고 삼법인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