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한다’와 ‘논다’를 두고 보면 우리는 노는 것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하다. 요즘 뭐 하냐는 물음에 그냥 논다고 하면 당당하지 못한 느낌도 든다. 이렇듯 어릴 적부터 노동은 가치 있고 노는 것은 죄악이라는 인식이 체득된 것이다. 일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논다는 것을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볼 것인가는 생각해 볼 문제다. 귀한 생명을 얻어 세상에 났는데 평생 일만 하다 늙고 병들어 죽는다면 좀 허무할 것 같다. 최소한 자신의 노동을 팔아 30년 넘게 일을 했다면 이제는 돈벌이 보다 놀거리에 비중을 두어야겠다. 이것은 인간으로서 의미 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존재론적 탐구일 수도 있다.
인류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던 사람들은 매일 먹고살기 위해 고되게 일을 했던 사람들이 아니라 놀면서 엉뚱한 상상을 했던 이들이다. 하늘의 별을 보며 천체의 움직임을 관측하거나 물질을 이루는 최소 단위가 궁금했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구 주위를 인공위성이 돌고 내 손의 휴대폰이라도 쓰고 있는 것이다. 일만 했던 사람들이 부지런히 걸어서 서울로 가고자 했다면 노는 사람들은 좀 빨리 갈 방법을 상상하다 자동차를 만들기도 하고 기차도 만들어 냈다. 하늘의 새를 보고 비행 수단을 연구했던 몽상가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지금 비행기라도 타고 다닌다.
그런데 사람들은 돈과 시간이 있다고 해서 잘 노는 것 같지는 않다. 고대나 중세 시대로 보면 예술이나 스포츠 같은 놀거리는 귀족에게나 가능했겠지만 지금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활동이다. 얼마 전 재미난 이야기를 들었다. 강남 테헤란로를 기준으로 남쪽의 부모들은 아이들을 쥐어짜듯 공부시키지만 북쪽의 부모들은 음악이나 예술 등 삶의 여유를 즐기도록 한다고 했다. 처음 듣는 이야기라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니 근거가 있어 보였다. 테헤란로 북쪽은 청담동, 삼성동 등 태생적 부자들이 많은 것 같고 남쪽으로는 법원, 교대 등이 있어 공부로 성공한 전문직군들이 많은 것 같았다.
‘놀다’의 사전적 의미는 놀이나 재미있는 일을 하며 즐겁게 지내는 것이다. 결국 ‘놀거리’가 있어야 하며 그것을 하는 내 마음이 즐거워야 하는 것이다. 즐겁다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이다. 누군가에게는 춤추기가 즐거워 밤을 새우기도 하지만 고역인 사람들도 있다. 어떤 이에게는 책을 펼치는 것이 즐거움이지만 글자만 봐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 사람마다 놀거리를 획일적으로 정의할 수는 없겠다.
잘 놀기 위해서는 어떡하면 될까? 먼저 내가 무엇을 할 때 즐거운지 알아야 한다. 그런데 이것을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 남들 노는 것으로 휩쓸려 가기 때문이다.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이것저것 시도해 보는 게 좋다. 비록 그것으로 돈벌이는 안 되지만 몰입되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게 자신의 놀거리일 것 같다. 나의 경우엔 무언가를 새롭게 기획하고 만들어 가는 과정이 놀거리 같다. 얼마 전 본부장 형님이 ‘너는 왜 일거리를 사서 만드냐?’고 하셨지만 내가 몰입되고 즐거운 걸 보면 이건 분명 놀거리같다. 놀거리가 많은 사람은 비교적 인생이 풍요로운 삶을 사는 것 같다. 50대 후반에 접어드니 이제는 돈벌이가 많은 사람보다 놀거리가 많은 사람이 좋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