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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용범 Jan 13. 2021

062. 나는 매일 절에 출근한다

다큐를 보는데 어느 스님  분이 나오셨다. 경남 하동의 지리산 자락에서 암자를 하나 짓고 혼자 생활하시는 분이었는데 스님의 표정을 보아하니 그렇게 평온할 수가 없었다. 낮에는 농사일도 하고 절집의 수선도 해가며 새벽에는 3시쯤 일어나 명상을 하는  혼자 사는 생활이지만 규칙이 있으신  보였다. 새벽에 일어나 밤새 내린 빛나는 서리에 감탄하는 모습이나 조촐한 산채로 차린 밥상을 앞에 두고 감사하는 모습을 보니  스님의 청정함마저 느껴진다. 스트레스받는 현대인들이 가끔 푸념하듯 내뱉는 말이 조용히 혼자서 살고 싶다는 말이다. 문득 조용히 혼자 사는 삶에 대한 궁금증이 일어났다. 만일 내가 자연과 더불어 혼자 살아간다면 어떨까라는 상상의 나래를 펴보았다. 일종의 시뮬레이션 게임과도 같은 거다. 

먼저 가족들과 직장에 알려야  것이다. 직장에는 이제 그만두겠다는 사직서를 내야  것이고 가족들에게는 무책임한 가장이라며 비난을 크게 받을 것이다. 어쩌면 미안한 마음에 퇴직금의  정도는 가족들에게 주고 나와야   같다. 이제는 어디서 혼자  것인가를 정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동해 바닷가는 수심이 깊어 혼자 살기에는 적합한 곳이 아닐 것이다. 세찬 해풍에 집은 쉬이 삭아들고 우선 먹고살 것이 적당치 않다. 그래서 산촌으로 가기로 한다. 하지만 그곳도 생활하기에 녹녹지는 않을 것이다. 조용히 혼자 살기로 하고 인적이 드문 지역에 간다면 전기와 수도를 끌어  일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쩌다 집을 하나 지어 생활한다 치자. 이제는 먹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농사를 짓는다고? 농사도  알아야 농사를 짓지 싹이나 제대로 올라올지 의문이다. 세탁도 해야 하고 청소도 해야 한다. 화장실이나 하수구를 만들어야 할 텐데 자연환경을 훼손한다고 환경법에 저촉될지도 모르겠다. 난방을 해야 하니 보일러도 설치해야 하는데 그건 내가 설치할  있는 게 아니다. 가끔 산에서 내려올 뱀을 생각하니 기겁을   같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린다.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오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꼬질꼬질한 모습들이었는지  것도 같다. 대충 상상해보고 내린 결론은 나는 자연과 더불어 혼자서  위인은 못되겠구나라는 것이다.

좋아 보이는 것과 좋은 것이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자연과 더불어 혼자 살아가는 삶은 단지 좋아 보이는 삶일  같다. 차라리 세상과 더불어 살되 마음을 편히 내는 삶이  현실적인 삶의 방식이겠다. 인간들이 모여 사는 데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서암 스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여보게 어떤  사람이 논두렁에 앉아 마음을 청정히 내면 그가  중일세,  논두렁이 절인 게야”.  말씀을 약간 변형하면 이렇게도   있겠지. “여보게, 어떤  사람이 매일 직장에 출근해  자리에 앉아 마음을 청정히 내면 그가  중일세,  앉은자리가  절인 게야.” 나는 오늘도 절에 출근한다. 나무 불. 법.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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