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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호 Mar 30. 2020

스트레스 가득했던 마취과

자유를 잃은 한 달

인턴 1년 동안 살이 참 많이 쪘지만, 5월에 마취과를 돌면서 1년 중 가장 살이 많이 붙었다. 그리고 그동안 몰랐던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자유'라는 게 정말 중요한 가치라는 것과, 나에게 스트레스성 폭식 성향이 있다는 것.


내가 판단하기로는, 마취과의 모든 인원은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 움직인다. 바로 ‘정시퇴근’이다. 그래서 절대 시간이 지체되는 꼴을 못 본다. 딱 한 달만 일하고 가는 인턴은 숙련도로 보나 집중력으로 보나 퇴근을 늦출 가능성이 가장 높은 요주의 인물이다. 그로 인한 주변 사람들의 끊임없는 의심과 여러 번의 확인이 스트레스의 첫 번째 이유다. 매 수술마다 1년차가 와서 물어보고 가고, 잠시 후 3년차가 와서 물어보고 나가면, 다시 1년차가 와서 3년차가 뭐라고 했는지 물어본다.  


마취과 인턴 일의 대부분은 그냥 수술 중에 마취 기계 앞에 앉아있는 것이다. 아마 마취과 의사가 수술 중에 반드시 자리를 지켜야 하는 법이 있는 것 같은데, 가만히 앉아 있으면 몸은 편하긴 하다. 하지만 수술은 보통 아침 8시에 시작해서 최소 오후 5시, 길면 다음날까지도 넘어간다. 인턴은 간헐적으로 주어지는(레지던트가 쉬라고 할 때마다, 대략 2-3시간에 1번) 쉬는 시간 5분, 식사 시간 20분을 칼같이 지켜야 하며 이외의 시간에는 수술방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킨다. 하루 종일 감옥에 갇혀 있는 듯한 기분이 스트레스의 두 번째 이유다. 정말 감옥이라고 해도 무방한 것이, 근무 중 이동 범위가 의자에서 앉았다 일어나는 것뿐이다.


가끔 수술 중 마취과 의사가 해야 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약으로 혈압을 조절하거나, 필요시에 수액을 주거나 하는 것인데, 인턴에게는 그 자유 역시 부여되지 않는다. 레지던트가 ‘혈압 얼마까지 떨어지면 전화하세요’ 하고 나가면 혈압 모니터 보다가 떨어지면 전화하고, 레지던트가 ‘약 뭐 얼마 주세요’ 하면 약을 주는 게 인턴의 일이다. 그리고 보통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레지던트의 주변 소리는 다른 마취과 레지던트들의 수다와 웃음소리이다. 레지던트가 나를 수술방에 배치해 놓은 감시병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스트레스의 세 번째 이유이다.


마취과를 돌기 전까지는 나는 스트레스를 잘 안 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는 그냥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스트레스를 덜 받는 환경에 있었던 거지, 스트레스에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북한 사람은 다 이렇게 사는 건가’ 생각하면서 퇴근 후 폭음과 폭식을 반복했다. 그래도 마취과를 돌면서 얻은 게 있다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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