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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호 Jun 03. 2020

19금이 아닌 영화는 쓰레기다

그 19금 이야기 아님

중학교 때 괴짜 도덕 선생님이 한 분 계셨다. 교과서의 도덕을 가르치다가도 어느새 자신만의 도덕을 설파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도덕이 사회에 흔한 내용은 아니었다. 불편해하는 친구들도 많았지만, 나는 선생님만의 도덕을 듣는 것이 참 좋았다. 시간이 많이 흘러 좋았던 느낌만 기억나고 내용은 거의 다 잊혔는데,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마다 생각나는 그의 도덕이 있다.


선생님은 수업을 하시다가 갑자기 아무 상관없는 얘기로 넘어가시곤 했는데, 그 날은 다짜고짜 "19세 제한이 안 걸린 영화는 다 쓰레기야. 너희 나이에 볼 수 있는 영화는 다 거짓부렁이야. 몰래몰래 19세 영화 좀 보고 그래라~" 말씀하셨다. 당시 '19세 영화'라 하면 야한 영화만 떠오르던 풋풋(?)했던 나로서는 선생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성인이 되고 다양한 19금 작품을 접하고 나서야 선생님의 '쓰레기', '거짓부렁' 워딩을 이해하게 되었다. 설명하기 앞서 19금 상업용 영화 및 드라마에서 한국과 미국의 차이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한국의 19금은 '성인만을 위한 콘텐츠'라는 뜻이라면, 미국의 19금은 '미성년자가 보기에 부적합한 콘텐츠'라는 뜻이다.


한국의 19금은 섹스와 폭력만 있다. 스토리에 개연성이 없고 다짜고짜 일을 벌인다. 관객과 시청자 역시 스토리에 기대가 없다. 누가 벗는지 얼마나 잔인한지에만 관심이 있다. 19금은 스토리가 없으니 15금에서 스토리를 참고하면, 주로 약자가 역경을 딛고 강자에게 승리하는 내용 또는 재벌가 남자와 가난한 여자의 사랑 이야기다. 비현실의 극치를 보여 준다.


반면 미국의 19금은 지독할 정도로 현실적이다. 섹스는 감정이 얼마나 무르익었는지 보여 준다. 폭력이나 살인은 갈등이 절정에 달했음을 보여준다. 강자에게 저항하던 약자는 죽거나 굴복하거나 도망친다. 비슷한 위치에 있는 사람끼리만 사랑에 빠진다. 몇몇 작품은 보다 보면 혹시 미성년자가 볼까 봐 두려워진다. 한창 꿈을 키울 나이에 너무 빨리 현실을 깨달을까 걱정이 되는 것이다.


다시 도덕 선생님으로 돌아가면, 선생님의 추천은 한국의 19금 독립영화다. 아쉽게도 작품명은 기억이 나지 않데, 내가 미국 19금에서 느낀 점이 담겨 있는 영화가 아니었을까 싶다. 말이 좀 과격하지만, 19금이 아닌 영화가 쓰레기에 거짓부렁이라는 말은 결국 영화가 현실을 왜곡하면 안 된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선생님은 우리들이 세상을 좀 더 정확하게 보기를 원하셨던 것 같다.


사실 최근 몇 년 동안 한국 19금의 편견을 깨는 작품들이 꽤 있었다. 예측 불가능한 스토리로 많은 해석을 남긴 <곡성>, 모히또와 몰디브 외에도 정치판의 추악함을 보여준 <내부자들>, 고등학생의 19금 범죄를 다룬 <인간 수업>, 현실적인 불륜을 보여준 <부부의 세계>까지. 모두 19금 제한을 걸고도 대중의 호평을 받는 데 성공했다. '파격적', '충격적', '대담함' 등으로 칭찬받지만 사실 그냥 '현실'을 보여준 것이다.


위의 작품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관객과 시청자가 연령 제한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19금이니까 이런 장면이 나와야지'가 아닌 '이런 스토리니까 19금이구나'라는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에서 '19금'이 가졌던 이미지를 생각하면, 이런 작품들의 탄생은 매우 고무적이다. 앞으로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서 보다 현실적인 19금이 더 많아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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