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시호 Jun 15. 2020

심장을 때리는 드럼

의대 입학 후 가장 먼저 가입한 동아리는 밴드부였다. 밴드부의 이름은 '식스 라인즈' 였는데, 통기타 줄이 여섯 개인 것에 착안하여 동아리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의대생만으로 구성된 밴드 동아리다 보니 경력자는 거의 없었고, 입문자들끼리 열심히 연습해서 공연하는 친목 위주의 밴드였다. 


밴드부를 하려면 당연히 악기를 다룰 줄 알아야 한다. 내가 선택한 악기는 드럼이었다. 드럼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 유일하게 앉아서 연주하는 악기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도 그렇지만, 아주 예전부터 오래 서있는 것을 참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밴드부의 교육 시스템은 별 게 없었다. 열심히 연습하고 있으면 드럼 선배가 뭔가 거슬리는지 슬쩍 온다. 와서는 이것저것 툭툭 알려주고, '이것도 못해?' 하면서 직접 시범을 보여주면 은근히 큰 도움이 되는 것이다. 역시 선배는 다르구나 하다가도, 정작 본인 연주를 말아먹는 모습을 보면 인간미가 물씬 풍겼다.


드럼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첫 여름방학, 밤마다 심장이 쿵쿵대서 잠에 못 들겠더라. 선배에게 이 기현상에 대해 물었더니, 멋진 대답이 돌아왔다. "드럼 베이스 소리가 심장 소리라서 그래~" 드럼을 연주할 때 오른발로 밟아서 소리를 내는 큰 북이 있는데, 이를 베이스라 한다. 


이 베이스의 소리가 심장 소리랑 똑같아서 빨리 밟을수록 심장이 빨리 뛰게 되는데, 그것이 내가 밤에 잠 못 드는 이유고, 또한 드럼 비트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라는 것이다. 농담을 즐겨 하는 선배라 신빙성은 좀 떨어졌지만, 멋있는 말임은 분명했다. 이후로 드럼 후배들이 들어올 때마다 열심히 가르쳤다. "자, 기억해! 베이스 소리는 심장 소리다!"


이 선배의 다른 명언도 있다. 공연 전 선배들 앞에서 점검을 받는 시간이 있는데, 흥에 겨워서 그만 드럼을 아주 크게 연주하고 말았다. 다른 악기와 보컬이 전부 묻혀버릴 정도여서 다른 선배들에게 혼나던 중, 그 선배가 딱 말했다. "아냐~ 잘했어~ 드럼은 세게 칠수록 잘 치는 거야~"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단순히 나를 지켜주기 위해서 한 말인 줄 알았는데, 공연을 하면 할수록 맞는 말이었다. 드럼을 세게 때리면 때릴수록 관객의 환호와 함성은 더 크게 돌아왔다. 세게 치다가 북도 찢어먹고, 심벌도 깨보고, 스틱도 부러져봐야 어디 가서 드럼 좀 친다고 말할 수 있다.


밴드의 모든 악기는 다 멋있지만 아무래도 드럼이 가장 멋지다. 밴드 내의 유일한 타악기로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고, 기본 리듬을 끌고 가는 중심점 역할 역시 맡고 있다. 드럼을 잘 치는 것처럼 보이는 팁을 하나 방출하자면, 박자에 맞춰 머리를 흔들면 엄청 잘해 보인다. 하나 더 방출하자면, 괜히 다른 악기 연주자와 눈을 맞추면서 치면 더욱 잘해 보인다. 혹시 밴드에 관심 있는 분이 계시다면 멋이 넘치는 드럼을 꼭 추천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피로는 간 때문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