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여름방학, 그러니까 유급 후 두 번째로 겪는 본과 1학년의 여름방학에는 한 달간 미국에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왠지 동양인이라고 무시를 당할까 봐 출발 하루 전 머리를 바짝 밀고 갔다. 실제로 무시하는 미국인은 전혀 없었는데, 중국인으로 오해하는 사람은 상당히 많았다. 실제로 중국인 남자 관광객은 빡빡이가 정말 많아서, 충분히 오해를 살만한 머리 스타일이었다.
여행은 친구들 3명과 같이 떠났는데, 배낭여행 컨셉이었다. 미국 서부의 LA에서 시작하여 2주간 서부를 여행하다가, 뉴욕으로 이동하여 2주간 미국 동부를 여행하고 돌아왔다. 돈이 그리 넉넉지는 않아서 대부분은 꼭 필요한 교통비, 숙박비, 식비로만 지출하게 되었다. 그래도 아주 가난했던 것은 아니라서, 적당한 숙소에서 충분히 잘 잤고, 식사도 돈이 없어서 굶고 넘어간 적은 없었다.
미국 출발 직전에 어디 신문에서 미국인이 평가한 햄버거 체인점 순위라는 기사를 발견했다. 쭉 살펴보니 아는 체인점이라고는 버거킹과 맥도날드 밖에 없었는데, 둘 다 최하위에 위치해 있었다. 당시 햄버거를 좋아하던 때라 맥도날드에 일주일에 2번씩은 꼭 방문했었는데, 그 맛있는 맥도날드가 미국에서는 꼴찌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꼭 미국의 최상위 햄버거를 먹어보리라 다짐했다.
미국에 갔더니 생각보다 물가가 더 비쌌다. 물가도 비싼데 식사 후에는 팁도 줘야 되고, 메뉴판에는 없던 세금까지 더 받아가는 것이었다. 예상보다 많이 나가는 식비에 흠칫하고 있던 중, 맥도날드에서 '맥너겟 40개 10달러' 이벤트를 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미국 맥도날드가 맛이 없다 그랬는데..." 하면서 들어갔는데, 메뉴 전광판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한국과 거의 비슷한 가격으로 햄버거를 팔고 있었다.
원래는 너겟만 사서 가려고 했는데, 앉아서 세트를 하나씩 주문했다. 꼴찌라는 생각에 별 기대 없이 먹었는데, 너겟과 햄버거의 맛은 한국보다 월등히 좋았다. '역시 햄버거의 나라군' 하면서, 다른 햄버거집들에 대한 기대감이 매우 커졌다. 햄버거 체인점은 웨이터가 없어서 팁 역시 내지 않아도 되었다. 싼 가격으로 든든히 먹고 나오면서 식비 지출의 돌파구를 찾은 기분이었다. 이후로 매일 한 끼는 꼭 맥도날드에서 먹었다.
얼마 안 있어 랭킹 1위 '인 앤 아웃'에 가게 되었다. 인 앤 아웃은 서부에만 위치한 체인점이라 빨리 방문해야 했다. 갔더니 뚱뚱한 미국인들이 바글바글했다. 30분 정도 기다려 대표 메뉴를 주문하고 받아서 한 입 먹었는데, 물음표가 딱 떠올랐다. '이게 맛있다고?' 엄청난 양의 소금과 케첩, 치즈로 범벅된 버거는 너무나도 짜고 느끼했다. 반 정도 남기고 나오면서 앞으로는 맥도날드만 가기로 친구들과 한 마음 한 뜻으로 정했다.
어느 날에는 주변에 맥도날드가 없어서 랭킹이 뒤에서 2등인 '잭 인 더 박스'에 방문했는데, 신기하게도 입맛에 아주 잘 맞았다. 그 뒤에는 뉴욕에서 그 유명한 '쉑쉑 버거'(역사가 짧은 집이라 순위표에는 없다) 본점에 방문하여 1시간을 기다려서 먹었는데, 인 앤 아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짜고 느끼한 맛이었다. 그제야 우리는 깨달았다. '미국인들은 짜고 느끼한 음식일수록 맛있다고 느끼는구나. 식성이 이렇게나 다르구나'
동부에만 있다는 랭킹 3위 '파이브 가이즈'는 조금 달랐다. 원하는 토핑을 선택하는 시스템이었는데, 영어가 짧아서 어버버 하다 보니 우연히 아주 맛있는 버거를 만들게 되었다. 하지만 초심자의 행운이었다. 그때의 맛을 추억하며 두 번째로 방문한 파이브 가이즈에서는 조합에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다. 그 뒤로는 다시 맥도날드만 다니게 되었다.
미국에서 매일 맥도날드를 먹은 결과, 영화 <슈퍼 사이즈 미>의 주인공 같은 몸이 되어서 한국에 돌아왔다. 한국에 온 기념으로 한국 맥도날드를 방문하여 버거를 받았는데, 내가 먹던 게 이렇게 부실한 버거였나 싶었다. 크기도 훨씬 작고, 맛도 뭔가 약하고, 여러모로 실망스러웠다. 어느새 미국 입맛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뒤로는 왠지 햄버거가 싫어져서 한국 최고의 스테디 셀러인 제육볶음과 부대찌개를 자주 먹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