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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이쑤 Mar 18. 2018

당신의 로망을 일깨우세요, 엄마와 함께 마추픽추를!

자연 앞에 겸손해지는 순간, 마추픽추를 맞이하다

:::Prologue, 막연한 꿈이 현실로! 우연과 인연 :::

고등학교 때였던 것 같다. 마추픽추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것이. 

아직도 철이 들기엔 한참 멀었지만, 그때 오히려 더 어른이 되고 싶었다. 친구들끼리 시시덕거리면서 웃고 떠드는 시간이 아까웠고, 공부를 하기엔 휴식이 필요했다. 그래서 점심시간이든 쉬는 시간이든 틈만 나면 학교 도서관에 올라가 여행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그때 여고생의 마음에 불을 짚였던 두 공간이 뉴욕과 마추픽추였다. 그 두 곳은 내가 이 답답한 시골을 벗어나 서울에 가고 어른이 되면 언젠가 꼭 가봐야지, 뉴욕에선 꼭 살아봐야지 마음먹은 곳이었다.  


 그리고 그 꿈과 다짐이 희미해질 때쯤이었다. 우연히 친구와 실컷 수다로 밤을 지새운 다음날 일요일 오전 내가 받아보는 블로그와 카페에 온통 남미 대란이라는 단어로 도배되어 무슨 일인가 했다. 에어로멕시코가 한국에 취항해서 남미로 가는 비행기를 30만 원대에 발권할 수 있다고 했다. 순간 가격에 이성을 잃고 마냥 로망이 있었던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아웃으로 하고 여러 번 비행기 타기 귀찮아 멕시코 시티로 인을 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남미는 넓었고 멕시코시티에서 부에노스 아이레스까지는 또 다른 대륙 이동, 9시간이 걸리는 긴 비행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발권 후 왜 그걸 알아보지 않고 기껏해야 한두 시간일 것이라 생각한 나를 자책했다. 

 ::: 원 없이 비행기를 탔던 2월, 출장과 여행 사이:::

 2018년 2월은 내게 굉장히 특별한 달로 기억될 것이다. 2월 1일부터 시작된 출장을 중간에 휴가가 미리 잡혀있어 한국으로 귀국하고 공항을 벗어난 지 9시간이 채 되지 않아 겨우 씻고 다시 짐을 싸고 또 남미로 떠나는 일정이었다. 비행기를 타는 것이 물릴 법도 한데 생각보다 비행기는 쾌적했고 이것저것 아끼는 것 없이 적당한 친절과 새 기재라 여러모로 마음에 들었다. 공항 택시가 악명 높다 하여 깔끔하게 우버를 부르려다 인증에 계속 실패해 공항 내에 사설 택시 회사 중 행선지를 말하면 호텔 목적지로 안전하게 데려다주는 서비스를 이용해서 호텔에 도착했다. 사실 투숙이 아니라 씻고 장시간 비행에 몸만 잠시 좀 누을 계획이라 위치 좋은 ibis를 선택했는데 얼리 체크인이 되지 않아 짐만 두고 거리로 나왔다.

그리고 atm을 찾아 멕시코 돈을 환전하고 엄마 핸드폰에 심카드를 하나 샀다. 호텔 주위가 번화가라 맛있는 타코 집을 찾으러 다녔는데 길거리에 사람이 많길래 한번 먹었다가 자신이 직접 customize 해서 먹는 소스 중에 핫소스인 줄 모르고 너무 많이 뿌리는 바람에 한참을 맵게 먹었다. 

그리고 타코 먹으러 공항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그 옆집에도 사람이 북적거리길래 옆집에 있는 타코 가게로 또 향했다. 양심상 하나만 시켜 먹었는데 진짜 거대한 양의 타코가 신선한 아보카도와 아낌없이 주는 고기를 보고 있자면 역시 타코의 나라에 잘 왔구나 싶었다. 그리고 왜 멕시코 사람들이 하나같이 chubby 한 지 타코를 맛보고 알았다. 마냥 느끼한 것도 아닌데 칼로리는 높고 맛있어서 계속 들어간다. 엄청난 포만감에 양도 많은데 서양 음식 중에 먹고 나서 제일 든든한 게 멕시코시티에서 먹은 타코였다. 

어느 나라나 요거트와 초콜릿 우유는 꼭 시도해보는 편이다. 배고 부르건 고프건 우선 눈에 보일 때 사둬야 언젠가는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멕시코 시티의 초콜릿 우유와 요거트는 나쁘지도 맛있지도 않은 아주 적당한 보통의 맛이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주위에 있으면 진짜 맛있는 술을 사 가고 싶었는데 사실 뭘 사 오라고 했으면 또 그걸 미친 듯이 뒤질 텐데 늘 나의 이런 성격에 스스로 지쳐하면서도 한 가지 집중할 것, 목멜 수 있는 것들을 찾아 헤매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남미를 출발하기 전부터 환승 때문에 공항과 비행기에서 20시간이 넘게 있었는데 다시 6시간 집에서 쉬고 멕시코까지 장거리 비행 그리고 다시 8시간 쉬고 10시간에 가까운 비행에 몸이 많이 지쳐있었나 보다. 

 ::: 커피를 끊은 자에게 내린 형벌, 가혹하리만큼 맛있었던 커피의 나라 콜롬비아에서 맛본 인생 커피 :::

 새벽 6시에 내린 콜롬비아 공항에서는 커피의 나라답게 Juan Valdez라는 카페가 남미 사람들의 아침을 깨우는 모닝커피를 책임지고 있었다. 너무 정신이 없어서 이곳의 요구르트만 하나 사다가 보았는데 스타벅스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문전성시를 이루는 이곳의 커피 웨이팅 줄에 나도 같이 서보았다. 운이 좋게도 디카페인 커피를 마실 수 있었고 내 카페인, 디카페인 인생 통틀어 최고의 커피를 이곳에서 맛보았다. 커피가 이리도 진하고 맛있을 수 있다니 말도 안 되는 스케줄의 행군 속에서 세상의 피로가 확 풀리는 것을 느꼈다. 진짜 자주 먹을 순 없지만 내 인생에서 태어나 진짜 제대로 된 커피를 마셔봤다는 감사함이 들었다. 

다시 또 다음 비행기로 가는 기다림의 연속 속에 공항에선 점점 반 폐인이 되어갔다. 그래도 엄마와 함께라서 외롭지 않았다. 늘 나를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나의 편이, 아플 때나 힘들 때나 서로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존재와 함께라면 위험하고 흉흉한 소리가 들리는 남미도 두렵지 않았다. 엄마랑 같이 여행을 자주 다닌다고 하면 항상 자연적으로 듣는 소리가 있다. "엄마랑 싸우진 않으세요?" 딱히 우리는 싸울 일이 없다. 생각해보니 서로를 위해주고, 챙겨주고 배려해주고 서로가 먼저고,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려고 했었다.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을 사다 모아 먹어보는 편인데 라임맛 감자칩을 먹고 감자칩에 대한 예의를 져버리는 맛, 강제 다이어트가 되고 다신 감자칩이 생각나지 않는 맛이었다. 역시 보기 좋게 화려한 색깔에 현혹된 자의 최후를 맛보았다. 캐나다에서 처음 식초 맛 감자칩을 먹고도 감자칩에 장난쳐놓은 것 같아서 화가 났는데 오히려 그 맛을 떠올리면 캐나다가 생각나고 익숙해지는 것처럼 남미에서 이 맛에 익숙해지면 또 라임맛 감자칩도 그러러니 하고 먹고 있겠지. 역시 인간은 간사한 적응의 동물이다. 

 드디어 남미에 온 두 가지 이유 중 첫 번째 이유를 달성했다. 마추픽추가 있는 쿠스코에 도착을 한 것이다. 쿠스코 공항은 정말 작았고 도착하자마자 고산지대에 있다는 게 실감되었다. 모두들 배낭을 메고 위대한 자연을 마주하기 위한 준비를 단단히 한채 긴 비행을 마친 승자의 웃음과 기대감을 공항에서부터 느낄 수 있었다. 입국심사 옆에서 바로 러기지가 나오는 동선 이동에 있어 아주 효율적인 공항이었다. 

 :::아프리카 모로코가 더 열악한지, 쿠스코가 열악한지 내기하는 중 :::

 남미 카페에서 후기를 보고 쿠스코의 택시 아저씨에게 쿠스코 공항에서 오얀이땀보까지 가는 일정을 부탁드렸다. 잉카 레일 기차표를 반대방향으로 끊어서 그것도 70불에 가까운 수수료를 물고 가까스로 바꾼 후 아저씨가 내 이름을 들고 마중 나와 계셔서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중간에 관광명소들을 틈틈이 들러주셨다. 

하지만 너무 숨이 차고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걷는 것도 힘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아저씨가 연계된 작물 가게에 들어갔는데 내 발 밑에 강아지가 있는 줄 모르고 다른 곳을 보고 밟다가 강아지를 발로 스쳤다. 강아지도 놀라고 쪼리를 신은 나도 너무 놀라 하얗게 얼굴이 질렸다. 그리고 남미의 옥수수가 그렇게 비주얼적으로 인상적이길래 하나 사려고 했더니 아이고 아줌마들이 득달같이 차로 달려들어서 깜짝 놀랐다. 거스름돈이 없어 마음씨 좋은 아저씨가 2 솔주고 대신 사주셨다. 한국처럼 달콤하게 만드는 제품을 하나도 넣지 않아서인지 알맹이는 크고 튼실했지만 고소하거나 달콤한 맛은 없었다. 엄마와 함께 반을 겨우 먹고 강냉이 먹다가 강냉이 털릴 것 같은 질김에 먹는 것을 포기했다. 

:::자본주의  사회지만 돈에 물들지 않은 순박한 남미 사람들 :::

아저씨가 무사히 역 앞까지 데려다주셨다. 그리고 올 때는 콜렉티보를 탔는데 갈 때 아저씨 차보다 더 열악해서 역시 싼 게 비지떡임을 알았다. 엄마가 돌아올 때 너무 길이 울퉁불퉁하고 컨디션이 안 좋아서 힘들어하셨다. 마추픽추로 향하는 길에 이미 나는 2월 1일부터 시작된 장기 출장 덕에 한참 지쳐있었고 연이은 비행에 기대보다 목표한 것을 이루기 위한 생각에 경치 구경은 뒷전이었다. 엄마는 맨 앞자리에 한 좌석이 비어 엄마는 경치 구경을 하셨다. 그리고 나는 기차 안에서 줄곧 잠이 들었다. 아무리 쿠스코와 마추픽추가 남미를 대표하는 관광지라고 할지언정 사람들은 그리 관광객에 목메지 않았다. 관광대국 태국이나 동남아시아 어딜 가도 우리를 돈으로 보고 대하는 사람들도 많지만(물론 현지 사람들은 너무나 착하고 마음씨 곱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들과 매일같이 동료로 함께 일하고 있기에 말이다.) 남미에서는 팔아도 그만 안 팔아도 그만, 비싼 걸 사면 그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게 아니면 또 아닌 대로 굴러가서 괜히 돈 앞에서 사람 불편하게 만들었던 적이 없었다. 

도착이 가까워지자 나는 피곤이 풀린 듯 잠이 깨었다. 몇 번이고 쿠스코에서 기차역으로 가는 길에 심카드를 사려고 했었는데 현지인만 살 수 있다고 해서 마추픽추 역에서 호텔까지 가는 방법이라곤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주소가 전부였다. 그 동네는 작다고 하니 우선 주소 하나를 믿고 물어 물어 도착했는데 제일 산 중턱 꼭대기에 있는 호텔이었고 캐리어를 들고 낑낑대느라 힘들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하나같이 여유 있고 착하디 착한 사람들이었다. 매일 관광객들은 물어볼 텐데 이에 지치지 않고 늘 친절하셨다. 

 짐을 좀 풀고 한 숨 자고 나서 다음날 마추픽추로 향하는 버스표를 끊으러 갔다. 여권을 들고 가지 않아서 여권 사본을 보여드리고 겨우 끊었는데 내 국적은 일본, 내 나이는 25살 엄마 나이는 50살로 임의 지정해주셨다. 그리고 출출한 배를 달래기 위해 주위에 북적거리는 화덕 피자집을 찾았다. 막 구운 피자야 뭔들 맛이 없겠냐만은 이리도 열악한 인프라에서 치즈와 빵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 한 끼였다. 라스베이거스 코카콜라 매장에서 먹어봤지만 남미에 왔으면 잉카 콜라를 마셔봐야겠단 사명감에 시켰다. 인공 첨가물이 가득 들어간 향에  잉카 콜라는 친해지기 어려운 음료였다. 그리고 내일을 위한 바나나와 사과 그리고 물을 좀 사두었다. 

::: 결혼하고 싶은 남자의 새로운 정의, 유희열 :::

새벽 4시 반에 겨우 잠을 깨어 체크아웃을 마치고 호텔에서 주는 조식을 먹었는데 집에서 만든 홈메이드 쿡처럼 종류는 많지 않았지만 음식에 정성이 가득 들어가 있었다. 비가 추적거리면서 오늘의 날씨가 좋아지길 바랬다. 유희열과 이적이 함께 간 꽃보다 청춘에서 마추픽추의 날씨가 한참 안 좋아 못 보고 내려가나 싶었는데 기적적으로 날씨가 개이는 것을 보고 날씨가 지금은 흐려도 언젠가 한 번은 개일 것이란 희망이 있었다. 그리고 한 번도 유희열이 멋진 남자로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그 방송에서 마추픽추를 보게 되고 바로 자신의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보고 있는 이 놀라운 풍경을 묘사해주고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조곤조곤 설명해주는 모습이 너무도 인상적이었다. 아름다운 부부와 결혼생활의 로망은 그의 행동에서부터 나는 느꼈다. 

정말 말도 안 되게 위험한 길을 굽이 굽이 올라 마추픽추에 어렵지 않게 다다를 수 있었다. 그리고 새벽이라 그런지 비도 추적추적 내리고 안개도 가득 끼어서 눈앞에 마추픽추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해는 나지 않았지만 구름은 시시각각 걷히기 시작했고 구름이 걷힐 때마다 언뜻 보이는 마추픽추를 보고 감탄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전 세계 좋다는 곳 남 부럽지 않게 많이 가 보았는데 갈 때마다 그냥 사진과 똑같구나, 대단하긴 하구 나정도로 그쳤던 나였다. 하지만 마추픽추가 주는 감동과 감흥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 첩첩산중에 인간들이 마을을 만들어 놨다는 것, 그리고 세상의 어떤 명작 영화보다 더 큰 시각적 감동을 주고 있었다. 아마도 이곳에 다다르기까지 너무 힘든 여정이라 그 감동은 배가 되는 부분을 인정하지 않을 순 없지만 죽기 전 꼭 가봐야 하는 명소로 마추픽추가 꼽히는 데에 있어선 조금의 이견이 없다. 

 :::엄마와 함께라면 세상 어디든 두렵지 않아, 지켜줘야 하는 존재가 되어버린 나의 부모님 :::

 이번 남미 여행에선 엄마와 기내용 캐리어 하나와 백팩만 믿고 다녔다. 거의 하루에 한 번씩 비행기를 탔고 숙소도 호텔에서 잠을 자기 위해서가 아니라 잠시 몸을 눕히고 씻기 위해서 다닌 게 전부였다. 그만큼 많은 비행 일정 중 단 한 비행도 놓치지 않고 연착이나 어려움이 없었다. 그 10일간의 어려운 일정을 불평불만 없이 옆에서 들어준 엄마가 고마웠고 이 광경을 우리 가족 모두가 보지 못한다는 아쉬움 반, 엄마와 함께 이 순간을 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적어도 함께 추억할 수 있는 존재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엄마라는 것이 좋았고, 언젠가 한번 엄마에게도 이 기회가 있었음 했는데 이 곳까지 가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쉽지 않아 별 탈 없이 이곳에 엄마와 함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뿌듯했다.

와이나 픽추까지 가는 티켓을 샀는데 비가 오고 안개가 너무 끼어있었다. 그리고 고산병 때문에 계단을 한 발씩 내딛을 때마다 무릎이 후들거리고, 속이 메슥거리고 머리가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아 와이나 픽추를 포기하고 마추픽추만 제대로 돌아보기로 했다. 사실 세 시간이면 충분히 돌아본다고 하지만 그냥 여기서 마냥 마추픽추를 지겨울 만큼 바라보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쿠스코에서 평화로운  춤판, 그리고 마추픽추의 여운이 사라지지 않는 곳 :::

 호텔 로비에서 한참을 와이파이를 쓰고 다음 행선지이자 내가 사랑해마지않는 도시 부에노스 아이레스와 이과수 폭포의 호텔을 예약하고 부에노스아이레스 공항에서 호텔까지 택시도 호텔 측에 부탁해두었다. 엄마와의 여행에서는 돈 이삼만 원, 십만 원, 이십만 원을 아끼면 안 된다.  그거 아끼지 않고 편하게 여행을 진행할 때 50대인 엄마도 10박이 넘는 매일같이 비행기를 타는 강행군인 남미 여행도 해내실 수 있었던 큰 원천이 되기도 했다. 물론 나 혼자 혹은 친구들과 함께 갔을 땐 꿈도 꿀 수 없는 사치지만 이런 판단과 씀씀이가 부모님과의 여행에 있어서 서로 불만 없이 좋은 것 먹고 좋은 생각 하며 좋은 추억 쌓을 수 있는 밑거름이 되리라 확신한다. 한참을 호텔 로비에 있다가 호텔 앞 작은 광장에 나왔는데 동네 개들이 주위를 서성거려서 무서워 짐을 들고 길거리에 음악이 퍼지는 카페에 앉았다. 갑자기 각기 모르는 서양 아줌마들이 흥이 나서 이곳을 클럽으로 만드는 가 싶더니 또 화끈하게 몇 곡 흔들어 주시곤 제 갈길 떠나셨다. 앨범을 한 분만 사시고 나머지 분들은 앨범도 안 사서 거리의 악사들도 연주를 바로 접었다. 

기차 시간에 맞춰 시장 구경을 했다. 장식품 몇 개가 마음에 드는 것이 있었는데 너무 비쌌고 동네에서 혼자서도 잘 노는 아기가 너무 귀여웠다. 그리고 다시 쿠스코로 우리를 데려다주는 기차 안에서는 옷을 팔기 위해서 직원들이 직접 그 옷을 입고 패션쇼도 벌리고 현지 전통 인형탈을 쓰고 엔터테인먼트 쇼하는 시간도 가졌다. 그리고 무사히 오얀이땀보역에 도착했다. 멋모르고 눈에 보이는 차를 타고 10 솔씩 주고 쿠스코 시내로 향했다. 갈 때는 6만 원쯤 주고 전용택시를 이용해서 그런지 너무 멀리 돌아가고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려 예상보다 1시간이나 더 늦게 도착했다. 

힐튼을 잡으려다가 가는 길이 복잡해 그냥 시내 가운데에 있는 호텔을 잡았는데 언제든 시내 구경하기 좋아서 만족스러웠다. 호텔로 가기 전 지금 들어가면 다시 나오지 않을 것 같아 고산병이 심해져서 만만한 kfc에 가서 치킨을 먹었는데 굉장히 맛이 없었다. 치킨이 맛없기 쉽지 않은데 한 조각을 먹기가 힘들 만큼 맛이 없었고 콜라를 따르는 기계가 고장 나서 직접 페트병 콜라를 따라 주는 페루 스타일 kfc를 체험하고 호텔로 체크인했다.

오전에 엄마와 가볍게 쿠스코 산책을 하고 다시 돌아와 준비를 한 뒤 쿠스코 시내에 있는 큰 시장이 있다고 하여 그곳을 걸어갔다. 가는 길에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비를 피하기 위해 계속 시장을 돌았다. 동네 개들을 줄 없이 마음껏 풀어놓아서 가끔 개를 보고 놀라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이 동네 개들은 사람을 무서워하지도 않고 짖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만큼 이곳 사람들만큼이나 평화롭고 자유분방했다. 

딱히 밥을 먹어볼 생각은 없었는데 점심시간이기도 했고 사람들이 너무 맛있게 먹고 있어서 예상 가능한 음식들을 시켰다. 5,6000원쯤 하니 절대 싼 가격이 아니지만 양과 대비하면 굉장히 싼 음식들이었다. 누구나 잘 먹을 수 있는 고기와 밥이었고 거대한 양에 압도되어 반도 먹지 못하고 녹다운되었다. 이곳 사람들은 한 그릇씩 싹싹 비우는 것을 보고 신기하기도 했다.

::: 소원성취,  남미에서 유일하게 사온 기념품 :::

호텔에서 별 탈 없이 체크인을 마치고 페루 리마로 향했다. 비행기는 너무도 작았고 미리 티켓 프린트를 해가지 않아 급하게 라운지에서 티켓 프린트를 마쳤다. 한 시간 좀 안 되는 비행은 내리고 타고 수속하는데 국내선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한다. 악명 높은 리마 공항에 내려선 택시도 흉흉한 이야기들이 많아 좀 바보 같긴 해도 남은 5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공항버스를 엄마와 두 사람이서 이용했다. 택시와 같은 가격이었지만 엄마와 나는 안전을 택했고 그러다 보니 버스가 출발하는 시간을 맞춰서 각 2시간을 빼먹고 출퇴근 시간 길이 막히는 것을 계산하니 막상 시내에선 두 시간 정도만 남았었다. 콜롬비아에서 Juan Valdez커피를 사 올까 엄청 고민하다가 짐 때문에 감당이 안돼서 끙끙거리다 리마에 유일하게 이 커피전문점이 몇 개 있다는 소식을 듣고 몰을 찾았다. 그리고 몰 바로 앞에는 바다가 펼쳐져있었다. 엄마랑 나랑 공항에서 시내까지 5만 원 주고 커피도 사고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정말 커피 향에 취해 계속 감탄하고 마시고 또 마셔도 그 Juan Valdez 커피맛이 주는 감동은 여전했다. 

한 시간에 한대씩 있는 버스시간과 다시 버스를 타는 장소까지 확실히 알려두고선 몰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아주 오랜만에 보는 문명과 도시의 화려한 불빛에 너무도 피곤했지만 없던 힘과 집중력으로 이곳에서만 살 수 있는 액세서리 쇼핑을 마쳤다. 

정말 긴 비행 혹은 짧은 숙면, 그리고 하루에 한 번씩 짐을 싸고 이동하기에 꼴이 말이 아니어서 남미에선 사진도 많이 찍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화장한 날은커녕 기내 패션에서 벗어난 옷이 거의 없을 만큼 레깅스에 큰 후드티만 내내 입고 다녔다. 

 ::: 현실과 여행 사이,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과 현재를 즐기고 싶은 마음이 공존할 때 :::

 리마가 위험하다고들 하지만 신시가지 몰에서 본 리마의 바다는 아름다웠고 평화로웠다. 그리고 다시 약속한 시간에 공항버스를 내렸던 곳에서 타려고 기다리는데 엄마랑 내가 한국말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한 호주 교포 분과 함께 이야기하게 되었다. 아주 신기했다. 외국에 나가서 유일한 외국인이 한국인이라는 사실도 재밌었다. 그렇게 무시무시한 이야기만 듣던 리마도 욕심을 버리고 나니 내가 원하는 커피는 양껏 사 와서 괜찮은 줄 알았는데 역시 처음 출발 때부터 계속 마음에 걸려 여러분 문의하던 sky airline이 문제였다. 환승시간 때문에 1시간 20분만 남겨두고 칠레 산티아고에서 출발할지가 미지수였던 찰나 애초에 같은 sky airline인데도 다음 비행 편 발권이 안되고 산티아고에서 도착해서 다시 체크인 수속을 밟아야 한다고 했다.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하는데 이들도 알고 있었다. 이미 그렇게 되면 다음 비행 편을 탈 수 없다는 사실을. 내가 티켓팅한 종이 티켓에는 온라인 체크인이 안된다고 했는데 공항에서 30분을 거기 매니저와 함께 씨름한 덕분에 온라인 체크인이 가능하다고 하여 또 한 번 사람 피를 말려야 했다. 부리나케 라운지로 들어가 온라인 체크인을 마쳤더니 한국에서 진행 중인 캠페인 배송사고가 있어서 내가 처리해야 했고, 또 다른 캠페인 문의사항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정말 라운지에서의 한 시간은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이 이번에도 역시나 휴가답지 않은 휴가와 일의 가운데서 한숨을 내쉬었다. 

 ::: 별의별 비행, 그것이 삶과 인생 :::   

 첫 비행기가 연착이라 미친 듯이 엄마랑 캐리어 들고 달려가 보안 수색을 끝내고 두 번째 비행기인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가는 비행기에 앉았더니 모든 걱정과 근심이 사라지는 듯했다. 이제 막 떠오르는 태양이 앞으로 남은 남미 일정엔 별 일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해주는 것같이 환하고 밝게 비추고 있었다. 객관적으로 남미에서 많은 마음고생을 하거나 몸고생을 한 것이 아닌데 혹시나 일정이 꼬이면 안 되고, 일정이 꼬였을 때 이들은 해결해주지 않으니 그게 더 힘들게 했던 것 같다. 여행도, 삶도 항상 방심할 때쯤 못살겠고 돌아버릴 것 같은 어려운 일들이 불현듯 다가와 한참 사람을 괴롭히다 또 언제 괴롭혔냐는 듯 웃게 만든다. 이 롤러코스터에서 조금은 내려오고 싶다는 바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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