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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이쑤 Mar 27. 2018

낭만을 찾아서 부에노스아이레스

엄마와 함께 한 남미, 이과수폭포와 문명 그리고 프리다칼로

 ::: 본능적인 끌림에 사로잡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

 역시 문물과 문명의 만남은 나를 설레게 한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꿈의 도시였다. 남미에서 가장 가고 싶은 도시, 은연중에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화려하지만 낭만이 넘쳤고 멀지만 언젠가는 꼭 한번쯤 가게 될 것만 같은 감흥을 내게 남겼다. 마추픽추 갈 생각도 없었고, 설날 휴가를 맞아 싸게 남미를 갔다올 수 있다는 기회라길래 그 말만 믿고 아무 생각없이 멕시코시티 인, 부에노스 아이레스 아웃의 티켓을 끊었던게 화근이었다. 차라리 지금와서 잘 생각한건 부에노스 아이레스 인아웃이 아니었기에 망정이지 멕시코시티와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이리도 멀리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사실 남미로 가는 비행기표를 끊어두고도 괜히 질렀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회사에서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정보를 찾지도 못했고 좀 남미에 대해서 알아가려고 하면 위험하다, 물건을 다 털렸다, 문제가 생겼다, 모든 것이 다 부정적인 후기들뿐이었다. 딱히 보고싶은 것도 없으면서 왜 사서 고생을 하냐고 자신에게 반문하길 수십번 그렇게 묻곤했다. 


 그렇게 날짜는 다가오고 엄마에게 남미중에서 어딜 제일 가고 싶냐고 물었을때 엄마는 마추픽추와 이과수폭포라 이야기하셨고 그렇게 일정을 넣었다. 나는 다른 욕심 하나 없이 엄마가 원하는 것 두가지와 내가 처음 이 비행기표를 끊었을때의 막연한 로망처럼 멕시코에선 가장 맛있는 부리또와 타코를 그리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남미의 파리라 불리는 애칭의 도시이니만큼 그곳의 정취를 듬뿍 느끼고 올 수 있다면 그 이외에 이번 여행을 통해 얻어지는 엑스트라가 있다면 무엇이든 다 좋을 것 같았다. 

 ::: 마음이 끌리는 대로,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찾다 :::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가는 여정은 절대 만만치 않았다. 정말 2월내내 하루이틀 간격으로 계속 비행기를 타고 공항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것 같다. 그래도 아주 감사한 것은 타이트한 일정사이에서도 비행에 전혀 차질없이 무사히 놓치거나 스케줄 꼬이지 않고 다녀왔다는 것이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택시비도 싼편이 아니라하여 미리 호텔에 공항까지 픽업택시를 예약했다. 공항에서 내 이름을 적은 (KIM 이라 적혀있어 내 이름이겠거니 했었다.) 할아버지와 인사하고 할아버지는 자신이 예약받은 사람들이 다 오면 운전기사들을 배차시켜 주는 시스템으로 일하셨다. 그렇게 별도의 현금거래없이 호텔에서 바로 결제를 하면 되니 편했고 어디로 가달라 이것저것 흥정하지 않아도 편하게 호텔로 체크인할 수 있어서 좋았다. 조금 비싸긴 하지만 부모님과의 여행에서 1~2만원, 많게는 10~20만원 아끼지만 않아도 서로가 싸울 수 있는 일들이 훨씬 줄어든다. 뭘 먹어야할지 모르겠고 딱히 배가 많이 고프지 않을때는 초코우유를 먹는다. 여기도 1+1이라 하나 샀더니 하나를 받았다. 간단히 씻고 길을 나섰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도 좋아, 

너만의 정취가 가득한 도시라면! :::

 사실 부에노스아이레스하면 탱고가 유명한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카니발이 있어서 모든 상점들이 문을 닫는다고 했다. 그래서 거리가 휑했다. 푸르고 넓직한 도로와 공원, 꽃까지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는 풍요로움의 상징이었다. 남미의 어떤 도시보다 질서정연했으며 잘 정돈되어있었다. 그래서 그 모든것들이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른다. 부에노스아이레스라는 도시가 주는 느낌이 좋아 무작정 이곳에 대한 로망과 환상으로 이곳을 찾았는데 여기가 탱고가 유명한진 몰랐다. 아르헨티나의 소고기가 싸고 맛있다 정도라 소고기나 한번 먹어야지라는 결심만 하게되었다.

 호텔에서 주는 지도를 들고 메인 거리로 향했다. 우선 아르헨티나 돈을 좀 뽑아 들고 몰을 어슬렁거렸다. 어차피 이과수폭포에서까지 쓸거면 핸드폰 심카드를 만들어 충전하는게 먼저라 그것부터 돌아다녔는데 슈퍼에서 충전도 가능하고 심카드까지 샀는데 올인원으로 작동이 되지 않아 결국 이 날 온 갖 슈퍼를 돌아다니며 물어보았지만 못하고 다음날 claro 문을 연다고 하여 가는 길에 이를 고치고 갔다.

 ::: 성분 좋고 효과좋은 귀한 남미의 화장품의 매력 ::: 

 아르헨티나가 나를 설레게 한 또 다른 이유는 유니베르소였다. 우연히 블로그를 통해 알게된 제품인데 성분도 좋고 오일이 너무 끈적이지 않고 매끈하게 수분감을 촉촉히 유지해주어 이 브랜드의 모든 제품들이 궁금해졌다. 한국에 와서도 장미 수분크림은 너무 잘쓰고 있지만 진짜 물건이라는 제품은 유니베르소의 립밤과 스트레스로 부터 안정감을 주는 코튼 미스트다. 이곳에서 10만원이 훌쩍 넘기게 화장품 쇼핑을 마쳤지만 더 사오고, 써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미련이 남는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의 시간이 좀 더 많았더라면 botanika의 해초오일을 가득 사오는 것이었는데 여행지에 가서 물건에 너무 연연해하지 않기로 했다. 옛날에는 그 브랜드, 물건을 위해 모든 신경과 일정을 거기에 집중했다면 이번에 유니베르소도 우연히 atm때문에 몰에 갔다가 유니베르소가 있는걸 발견하고 들르게 된 것이다. 

 ::: 오렌지 주스보다 싼 

흔한_아르헨티나의_스테이크 :::: 

 길을 걷다 아르헨티나에 왔으면 1일 1 소고기를 한다는 말을 익히 들었던지라 유서깊은 스테이크하우스에 착석했다. 바람도 좋고 날씨도 좋았다.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오랜만에 엄마랑 식사다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이태리에서 스테이크에 대한 한을 풀어보고자 너무 많이 시켰었던 악몽이 떠올라 1인분이 얼마나 큰지 우선 시켜보고 더 시키려고 했었는데 1인분도 육질이 야들야들 너무 맛있게 구워져있었지만 양이 충분했다. 샐러드와 함께 먹을 수 있어서 하나도 느끼함없이 왜 아르헨티나 소고기를 극찬하는지 알게 하는 맛이었다. 그리고 오렌지주스의 가격이나 샐러드디쉬보다 아주 조금 비싼게 스테이크가격이었을만큼 가격도 너무 쌌다. 이곳의 빵도 소고기도 모든 것이 풍부한 곳에서 최상의 질의 재료들로 음식을 맛볼수 있어 감사했고 행복했다.

 호텔에 들어가기전 물이랑 주전부리를 조금 사두었다. 워낙 많이 옮겨다는 일정에다가 내일은 이과수폭포로 가는 일정이 부담되어 오늘은 좀 쉬기로 했다. 엄마가 여행막바지가 되니 지쳐하시기도 해서 일부러 일정을 잡지 않았다. 이 곳 사람들은 유독 초코파이를 좋아한다. 브랜드도 여러가지가 있는데 유명하다는거 몇개 사먹어보아도 우리나라의 오리온 초코파이만큼 맛있는게 없다며 엄마와 입을 모았다. 

그간의 여독과 마추픽추에서의 고산병, 그리고 하루를 통으로 이동하는 일정에 지쳐 엄마랑 잠깐 눈을 붙였다 나중에 밤이 되면 카니발을 보러 나가기로 했다. 자봐야 두세시간 잘 수 있을까 했는데 엄마는 새벽 한시, 나는 새벽 세시에 눈이 떠졌다. 이미 시간은 너무 늦어있었고 황당하긴 했지만 또 다시 잠드는 것을 선택했다. 

 그렇게 한숨 푹 자고 나서 다음날 조식을 챙겨 먹었다. 종류도 많았고 사람도 붐비지 않아 식사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렇게 어영부영 보내선 정말 후회할 것 같아 우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에 찾아가보기로 했다. 날씨가 화창하고 쨍한데 습하지 않아 너무 좋았다. 적당히 발달된 문명과 화려하고 오래된 건축 양식에서 왜 사람들은 이곳을 남미의 파리라고 부르는지 충분히 납득이 되는 찰나의 순간이 연속이었다.

 ::: 지나간 것에 대해 연연해하지 말 것 :::

 뉴욕과 파리 그 어딘가쯤음을 닮아있는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보고있노라면 기분이 묘해졌다. 여행은 자주 있는 것이 아니니 한시간에 하나라도 더 보기위해서 아등바등했었던 날들을 뒤로한채, 오늘 피곤하면 푹 쉴 수 있고 아주 운이 좋게도 그 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카니발을 자느라 보기 좋게 놓치고 하루를 홀라당 다 까먹었는데도 그냥 웃어 넘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이 나에 대한 큰 변화였다. 이미 놓친 것, 잃은 것에 대한 미련보다 현재에 느낄 수 있는 햇살과 한결 개운해진 컨디션 그리고 무언가에 쫓기지 않고 내가 평소에 궁금하고 꿈꿔왔던 것을 직접 보러가는 길이라 좋았다. 어제 하루종일 가게란 가게는 다 돌아다니면서 핸드폰 심카드를 작동시키려고 했지만 결국 안되서 다음날 눈앞에 보이는 claro가게에 가서 빵빵 터지는 3g를 사용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일상에서도 부디 현재의 좌절감에 몸부림치기보다 현재라서 가진 것들에 대한 여유와 감사가 이어지길 바랐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곳곳에는 공원들도 많았다. 공원들은 하나같이 잘 정비되어있었고 사람들은 도심 한가운데에서 자신의 갈길을 가고 있었지만 찡그리고 있지 않았다. 무언가에 쫓겨서 불행한 얼굴을 하고 있지 않았다. 물론 대부분의 도시의 사람들이 그렇듯 바쁘게 어딘가를 떠나며 무표정하게 걷는 모습을 보곤 하지만 말이다.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빛 사이로 한점의 습함없이 빌딩 숲 사이사이를 걷고 있노라면 문명과 드디어 한층 가까워져 숨통이 트일 것만 같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의 지속가능한 경영 :::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머물렀던 2박 3일동안 유일하게 찾아 본 것이라곤 세상에서 가장 예쁜 서점이라는 El Ateneo 한 곳 뿐이다. 정말 여행자로썬, 그리고 자주 갈수 있는 일본의 어떤 도시도 아니고 바다건너 육지건너 부에노스 아이레스까지 가서 한 일이 고작 이것 뿐이라니 할 수 있었지만 그냥 몸과 마음이 허락되는대로 나를 놓아주기로 했다. 기대만큼 그리고 기대 이상으로 공연장으로 쓰였다던 서점은 내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너무나 화려하고 책이 주는 가치가 이리도 품격있을수 있음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곳만이 천국:::

 초등학생 시절 어느순간부터 엄마 아빠의 직업에 대한 개념을 받아들일 때 언저리였던 것 같다. 그냥 엄마아빠가 서점을 운영하는 직업을 가졌으면 참 좋을 것 같았다. 서점에서 매달 잡지를 구독하면 주는 견본품도 실컷 가질 수 있고 늘 조용한 분위기에 도서관가는 다른 그 특유의 새책 냄새가 좋았다. 늘 조용한 분위기와 책들 사이에서 파묻히고 싶었다. 

 El Ateneo는 어딜가나 포토스팟이 되는 곳이었다. 나는 뉴욕에 갈때마다 strand bookstore를 습관처럼 들리곤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인테리어 소품으로 사올만한 브랜드 철학을 담은 책을 사오거나 이곳의 상징이 되어 한국에서도 많은 직구를 하고 있는 에코백을 사와서 선물하기도 하고 내가 이곳을 추억하면서 자주 쓰기도 한다. 그리고 이곳엔 서점의 브랜드 로고뿐 아니라 책을 읽는 사람이나, 책에 대한 철학을 담은 글귀들을 예쁘게 디자인해서 갖다 놓는데 El Ateneo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 비해 직접 책을 구매해가는 사람들이 현저히 작았다. 서점을 관리하는데 드는 인력은 곳곳에 아주 많이 배치되어있는데 이를 관광수입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볼펜 몇개를 팔고 있었지 관광객들이 굳이 여기서 사가고 싶을만한 기념품이 전혀 보이지 않아서 안타까웠다. 정말 이곳에서 나는 에코백을 팔자고 이야기하고 싶었고, 에코백을 팔게 되면 지금 당장이라도 사가고 싶었다. 역시 미국의 선진화된 마케팅을 탓해야하나 이곳이 상업적인 공간이 되지 않으면 더이상 나라에서 funding을 하지 않는 한 이 아름다운 공간을 보존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몰아치기도 했다. 

 탱고의 도시답게 거리 곳곳에는 탱고를 이야기하고 있는 싸인들을 꽤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럴때마다 어제 저녁을 알람 하나 맞춰두지않고 홀라당 까먹은게 조금 아쉽긴 했지만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이런 그들의 문화로 인해 이들이 이리도 여유로울 수 있음을 알게 해주는 신호이기도 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왕년에 잘나가던 카페베네쯤 될까? 부에노스 아이레스 곳곳에서 마주할 수 있었던 Havanna 카페가 궁금하던 찰나 이과수폭포로 가는 비행기 시간이 많이 남아 있기에 남미스러운 여유를 즐겨보기로 했다. 딱히 이곳에 디카페인 커피를 팔지 않아 과일을 갈아넣은 신메뉴를 시켰는데 남미스러운 가득한 양에 한번 기겁을 하고 음료를 시키면 함께 곁들어 주는 와플 모양의 과자도 받았다. 사람들은 이곳을 자주 익숙하게 찾는듯 보였다. 우리는 카페를 찾는 대부분의 이유가 누군가와 만나고 이야기하기 위해서, 혹은 공부를 하기 위해서라면 이곳은 카페 자체의 분위기와 맛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하나같이 삶에는 여유가 뿜어져 나왔다. 이는 경제적 여유의 유무를 넘어 삶의 속도를 자신이 조절해나가는 주체성으로 부터 나오는 것이 분명해보였다.

 이미 오늘 목표로한 서점을 충분히 다 둘러보았고 카페에서 여유를 즐길만큼 즐겨보았으니 이젠 호텔로 돌아가더라도 시간이 한참 남아서 최대한 천천히 거리를 느끼며 돌아보았다. 그리고 호텔에서 짐 정리좀 할겸 짐도 미리 찾아서 로비에 자리 잡고 앉아서 비행기표를 다시 펴보았는데 식은땀이 났다. 내가 돌아오는 비행기표랑 시간을 잘못봐서 이미 비행기출발 시간까지 50분 남아있었다. 우선 할 수 있는것이라곤 눈에 보이는 택시를 잡아타고 공항으로 밟는 수밖에 없었는데 그래도 도심공항이라 호텔에서 공항까진 20분걸리는 거리였고, 신호등마다 모든 신호를 다 받더니 최대 시속 60km를 겨우 밟고 에어콘도 나오지 않는 찜통더위속에서 속이 자꾸 타들어가서 애꿎은 물만 삼켰다. 그렇게 겨우 공항에 도착을 하고선 티케팅이 끝난것을 알고 좌절하고 다른 항공사에 가서 다음 비행기 티켓을 끊으려고 봤는데 그것도 말이 통하지 않아 이상한 이야기만 계속 늘어놨다. 어떻게 눈치로 말을 알아듣다보니 지금 저가 항공이라 체크인은 다 해 둔 상황으로 우선 게이트로 가보라고 했다. 짐은 추가 비용이 있었지만 다행이 물지 않았고 게이트에선 사람들이 탑승중에 있어서 가까스로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그제서야 식은땀과 땀범벅으로 된 채로 겨우 숨을 삭히며 비행기에 타서도 그 긴장이 쉽게 놓이질 않았다. 

 호텔에서 조금 어정쩡한 시간에 도착해, 물론 이번에도 호텔에서 미리 공항 픽업 택시를 예약해두고 편하게 왔다. 쿠스코만큼이나 열악한 작은 공항이었지만 그래도 이 길을 비행기가 아니면 나와 같은 일정에선 절대 찾을 수 없는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정쩡한 시간에 체크인을 해서 이 날은 딱히 시내를 나가서 놀지 않는한 할 게 없어 보였다. 그냥 엄마랑 호텔에서 와이파이 팡팡 터지는 공간에서 뒹굴거리며 보내기로 했다. 저녁과 조식까지 제공이 되어서 아주 근사한 뷔페식 저녁을 먹었다. 

::: 어른이들의 놀이공원, 이과수 국립공원 ::: 

이과수폭포를 가기 위해 이렇게 비행기를 타고 이곳까지 험난한 여정을 거쳐서 온 것이기에 오늘은 마치 벼르고 벼뤘던 대망의 날을 마주한 기분이어서 새벽부터 일찍 잠에서 깨었다. 미리 전날 예약해둔 택시아저씨랑 차질없이 이른 시간에 나왔다고 했는데 마치 어른들의 놀이동산에 들어가는 신나는 어른이들이 미리 와 있었다. 단체 관광객부터 개인 관광객까지 입장권을 끊고 우리를 픽업해줄 아저씨와 시간약속을 꼼꼼히 해두고선 이과수 국립공원으로 입장했다. 호텔에서 알려준대로 보트를 타는 노란 조끼를 입은 아저씨들이 보여서 바로 제일 이른 시간대에 보트투어를 신청하고 부지런히 걸었다. 사실 시간적 여유만 되면 더 있고 싶었지만 오후 3시에 돌아가야하는 비행기가 있어 보트투어만 깔끔하게 제대로 하러 가는 것이 목표였다. 호텔안에서 관광상품을 설명해주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고 남미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그랬다. 함께 인연이 되어서 내가 이 상품을 선택하면 된거고 아니면 또 하나라도 더 팔기위해서 끈질기게 호객행위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쿨하게 좋은 상품을 친절하게 알려주고 이것이 무언가를 되돌려받기 위한 호의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보통의 태도로부터 나는 다른 삶에 대한 존중과 깨달음을 얻었다. 

 ::: 쟁여오고 싶은 유니베르소의 꿀잠 아이템 :::

 남미에서 온 화장품중에 내가 제일 만족하면서 썼던 것은 원래 Botanika 의 해초오일이었다. 어쩌면 수분감도 적당하고 피부에 쫙 달라붙어서 유수분밸런스 맞출 필요도 없이 너무 만족스럽게 잘썼는데 매장을 찾는게 힘들어 이번엔 아쉽지만 해초오일을 사오는 것은 포기했다. 그리고 운좋게도 universo매장에서 평소에 관심있었던 물건들을 사왔는데 장미 추출물 오일이 들어간 마스크팩은 일주일에 한번씩 하고 나면 조금의 피부 자극없이 극강의 홈케어를 자랑한다. 그리고 제일 비싸기도 했지만 그 값어치를 하는 크림도 리치한데 가볍게 발리고 피부 깊숙히 수분을 꽉 잡아줘서 저 크림 하나로 모든게 올인원이었다. universo는 역시 실망을 시키는 법이 없다. 모든 제품들이 하나같이 마음에 들었지만 그중에 완전 물건이다 싶은 것이 sleep easy mist다. 라벤다향이 들어있어 숙면을 취하는데 도와주는데 괜히 마음이 심란하고 싱숭생숭한 밤에 배개와 이불에 두세번 스프레이를 뿌리고 나면 아침까지 잠에서 깨는데 너무 포근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정말 이 제품의 가치를 알았다면 열통, 스물통이고 사와서 쟁여두고 싶은 아이템이다.

 그렇게 아저씨가 알려준대로 걷고 걸어 보트투어를 하는 정류장에 무사히 도착했다. 길이 많아 자칫 잘못하면 길을 잃으면 이 첩첩산중에서 큰일 날 것 같지만 선발대로 출발해 비슷한 동선으로 가는 외국인들과 함께 표지판을 살피며 무시하 도착했다. 그리고 맨 뒷자리에서 푸른 하늘과 이과수 국립공원 정글 한 가운데에서 선선하게 불어오는 자연의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틈틈히 해설가 아저씨의 자본주의적 미소와 농담이 오갔지만 뻥뚫린 공간에서 이과수폭포를 만나러 가는 길이 마냥 설레기만했다.

그렇게 미리 준비된 구명조끼를 입고 보트를 타고 한참을 가다보면 세계 3대 폭포인 이과수 폭포가 내 눈앞에 짠하고 펼쳐지는데 그 물살이 너무 쎄서 눈을 뜨는것도 힘들었다. 여기서 막상 너무 귀찮기도 했고 햇볕도 강하고 기계에 물이 들어갈까봐 핸드폰을 꺼내는게 너무 두려웠다. 남들 안하는 우비를 이중으로 하는 바람에 나는 거의 폭포 한 가운데에서도 심하게 젖진 않았다. 아무리 안젖는다고 하더라도 의자 사이로 들어오는 물에 레깅스가 조금 젖긴 했지만 금방 마르는 재질에 햇볕도 좋아 그리 거슬리진 않았다. 정말 나이아가라 폭포를 여러번 봤어도 이과수폭포가 주는 화려함은 왜 Poor Niagara라는 이야기를 했는지 그 말이 절로 나왔다. 수려하게 아름다운 폭포가 한눈에 들어오는데 진짜 세상을 다 가진듯 엄청난 광경이긴 했다. 마음같아선 한시간이고 보트 위에서 한참을 바라보고 싶었다. 자연이 빚어낸 폭포가 주는 감동은 세상 어떤 절경보다 특별한 가치를 지닌 것 같다. 

이제 남미에 오게 된 두가지 큰 대소사를 잘 치뤄냈으니 (마추픽추를 보고 이과수폭포를 본것) 긴장이 풀렸다. 이제 유일하게 내가 바라는 것은 무사히 한국에 도착할 수 있게 어떠한 비행기 딜레이없이 예정대로 집에 돌아가는 것이었다. 마트에서 아주 폭리에 가까운 과자도 와그작 와그작 씹으며 택시 아저씨랑 약속된 시간보다 조금 일찍 당겼어도 그 시간마저도 남아 엄마랑 출입구에 가까운 박물관에서 누워 있었다. 많이 일찍 도착한 공항이긴 했지만 여전히 시끌벅적했고 비행기는 지난번처럼 정시에 떠나서 우리를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데려다 주었다. 올때 갈때 비행기에서 창가 자리가 아니라서 이과수 폭포를 하늘 위에서 보지는 못했지만 사람들이 동요하는 목소리에 우리가 실컷 봤던 이과수 폭포를 지나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하였다. 택시를 타고 도심공항에서 부에노스 아이레스공항으로 움직이려고 했었는데 공항에서 그 공항으로 가는 공항버스가 있어서 그걸 타고 갔다. 괜히 공항에서 많은 시간을 대기하기 싫어 공항 버스를 한시간쯤 늦추고 제일 맛있어 보이는 맥도날드 프리미엄 버거를 반쯤 먹고선 엄마와 공항 바로 앞에 있는 바닷가에 놀러갔다.

별거 없었지만 참 가슴이 탁 트이고 즐거웠던 바다 구경이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조금만 더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참 감칠맛나게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맛보았다. 이 도시는 마지막날 떠나는 날까지 예쁜 하늘을 선사해주는지 멀지만 않다면 자주 오고 싶은 도시였고,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여유롭게 부에노스 아이레스 한달살기를 구현해보고 싶은 도시이기도 했다. 공항에 가면 그 도시의 명물을 다 만날 수 있다고 블로그에서 익히 들어왔던 마성의 아이스크림 Freddo의 진하고 크리미한 아이스크림을 엄마와 나눠먹고 남은 돈을 쓰기 위해서 havanna 초코파이를 샀다.

9시간의 비행을 앞두고 라운지에서 샤워까지 깔끔하게 마치고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꿀숙면을 취했다. 자정에 출발하는 비행기에다가 만석이 아니라서 엄마랑 편하게 두자리, 세자리씩 차지하면서 어렵지 않은 장거리 비행을 마쳤다. 사실 그 전날 미리 비딩해뒀던 멕시코시티부터 서울까지의 비지니스 클래스확정으로 한결 그 앞 비행기를 타는 마음이 편했다. 호텔에서 잔 것은 아니지만 남부럽지 않은 편안한 비코노미 비행을 마치고 멕시코시티에 또 내렸다. 이번엔 엄마랑 지하철을 타보기로 했는데 공항에서 연결된 지하철역이 있는데 그 지도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무작정 엄마랑 걷다가 눈에 보이는 지하철역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세상 어둡고 무서운 지하철역을 거쳐 테오티우아칸으로 향했다. 택시를 타고 편하게 갔어야했는데 그냥 시험삼아 지하철 갈아타는 것도 없어서 한번 해볼까하고 도전했는데 곧 범죄가 일어날 것만 같은 괴기한 분위기에 모든 사람들은 유일한 동양 여자인 엄마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몇번 우리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거냐고 물어볼때마다 먼저 챙겨준 남자가 자신과 같이 내린다며 함께 하차했다. 그리고 우리를 잠시 불러 알려주었다. 여기는 아주 위험한 도시니 핸드폰도 꺼내서 들고 다니지말고 지갑고 가방이 아니라 몸 속 가운데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둬야한다고 말이다. 그 진심어린 조언을 듣고 감사한 마음이 스치기도 전에 얼마나 우리는 현지인들도 무서움에 떠는 이 도시에서 발붙이고 여행하고 있었던 것인지 너무 겁없이 무작정 다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굉장히 복잡하고 크고 넓은 터미널 가장 끝에 우리가 가려는 테오티우아칸행 버스가 있었다. 타코를 사먹으려고 했는데 줄이 길어 오렌지 주스만 하나 겨우 들고 버스에 탔다. 그게 화근이었다. 그 전날도 과자 조금에 햄버거 반개를 먹은게 전부였고 다음날 오후가 되도록 먹은 음식이 없었는데 막상 도착했더니 배가 고프고 지쳐서 뜨거운 태양 아래서 걷는 것조차 힘이 빠졌다. 엄마랑 눈에 보이는 피라미드 하나만 올라갔다가 메인 피라미드에서는 아래에서 사진만 찍고 내려오기로 했다. 겉으로 보기엔 간격이 좁아보여도 내려올때 한 계단 한계단이 어찌나 조심스러운지 미끄러지면 얼굴 갈리는걸로 절대 끝나지 않을 경사였다. 

내리쬐는 태양 볕 아래 배는 고프고 지치고 가뜩이나 검은색 옷을 입어서 더 더웠다. 별다른 방법없이 이곳을 대충보고 빨리 도심으로 탈출하자는데 입을 모았다. 1시간이 넘는 버스를 타고 다시 터미널역에서 연결해주는 택시로 프리다칼로 미술관을 향하는데 또 한시간이 넘게 걸렸다. 택시를 연결해주는 아저씨가 유독 친절하게 직접 자신을 따라오라고 가르쳐주고 택시 아저씨에게도 우리를 목적지까지 설명해주는가 싶더니 택시에 우리를 태우고선 창문 사이로 손을 내민다. 팁을 달라고 해서 드렸지만 팁을 삥뜯기는 건 처음이었다. 얼마의 팁을 원하냐고 되물었더니 줄수 있는 만큼 주면 된다고 해서 1불쯤 되는 돈을 전달드렸다. 남미사람들은 이런 매력이 있다. 황당하기도 했지만 그리 당했다, 사기당했다 이런 마음이 들지 않아 너털웃음 지으며 넘어갔다.

 ::: 진짜 멕시코 현지인들의 식사와 

그들이 사랑한 화가를 마주 한다는 것은 :::

프리다칼로 미술관에 도착하였더니 생각보다 너무 긴 줄이 미술관으로 들어가기 위해 줄서 있었다. 족히 한시간의 웨이팅은 되어보여 미리 구글맵으로 찾아둔 멕시칸 음식 맛집이 몇블록 떨어져있어 배부터 채우고 무언가를 보든 말든 결정하기로 하고 식당에 들어갔다. 너무도 분위기 좋은 야외 테라스에서 뉴욕에서 혼자 여행온 친구도 만나고 이것 저것 유명해 보이는 메뉴들로 막 시켰다. 정말 질 좋은 고기와 바삭 구운 나초 그리고 신선한 과콰몰리의 조합은 천상의 맛을 자랑했다. 그간 남미에서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은 기억이 없었는데 남미 여행의 마지막에 이렇게 맛으로써 호사를 누릴 수 있어 행복했다. 한국에서도 멕시코음식을 종종 먹곤 하지만 진짜 현지 멕시코에서 잘한다는 식당에 가서 제대로 된 현지음식을 여유롭게 맛보는 순간이 너무 행복하고 감사했다. 여행의 묘미는 이런 가치에서 부터 찾아오는 짜릿함이지 않을까?

한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할거라는 주변의 말에도 딱히 두렵지 않았다. 실제로 한시간까지 기다리지도 않았고 이미 비행기 시간은 충분했기때문에 두려울게 없었다. 그리고 프리다칼로 미술관에 입장하기 위해 나도 이곳의 여느 다른 여행자들과 함께 그녀를 마주하기 위한 오랜 기다림을 시작하였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피부가 좀 타는 듯했지만 길고 긴 남미 여행의 여정을 큰 어려움 없이, 일정의 꼬임 없이,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에 신이 났다. 

 그녀의 작품을 사진으로 담기 위해서는 입장료의 반액에 가까운 금액을 주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표를 사야했다.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서 딱히 찍진 않았다. 엄마에게 프리다칼로의 삶에 대해서 얕은 지식이었지만 열심히 설명해주고 있던 찰나 내가 한국어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어떤 외국인 아줌마가 자신의 아이와 함께 나에게 다가와서는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한국어를 배웠던 적이 있었다고 했다. 신기하기도 하고, 내가 사용하는 언어와 문화에 대한 관심을 이 먼 이국땅에서 마주한 외국인이 알고 있다는 사실에 뭉클했다. 불행한 프리다 칼로의 삶이라 치중하기에 그녀는 그림을 그리는 순간만큼은 너무 행복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그녀는 나름의 유복한 집안에서 살아왔다는 것이다. 그녀가 작품을 그렸던 공간, 침실, 몸이 불편한 그녀가 늘 바라본 벽과 장식품들을 바라보고있노라면 화려한 색감만큼이나 자신을 치장하기 좋아하는 그녀에게 있어 얼마나 갑갑하고 답답한 삶이 었을까 헤아려 보았다. 

 그림 앞에선 한없이 자신의 세상을 표현할 수 있었던 여자, 자신의 감정과 심리를 꾹꾹 눌러담은 작품 한 점, 한 점들은 그녀가 평생을 지내왔던 생가의 유품들과 함께 그녀를 추억하길 바라는 전세계의 많은 팬들을 위해 추억할 수 있는 의미있는 장소였다. 

 택시를 부르려고 했었는데 워낙 프리다 칼로 미술관이 관광지라 주위에 택시가 많이 있었다. 누구가를 이곳에 내려다 주고 가려는 택시를 잡고 적당히 나쁘지 않은 가격에 흥정하여 공항으로 갔다. 1,2 터미널이 나눠져있을거라 생각못하고 1터미널에서만 왔다갔다 한 줄 알았는데 나는 2터미널에서 내려서 우리 짐도 그곳 터미널에 맡겨두었던 것이었다.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다시 표를 보여주고 트레인을 타고 짐을 찾았다. 마지막까지 남미는 우리를 편하게 데려다주지 않는구나 싶었다. 그래도 시간은 여유있어서 딱히 부담스럽지 않았다. 무엇보다 비지니스를 타고 19시간 비행은 두렵지 않았다. 적어도 발을 뻗고 누워갈 수 있는 편안한 취침이 허락된 비행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비지니스만 체크인을 하는 곳에 가서 체크인 게이트를 찾으려는데 어디서 총기사고가 일어났는지 순식간에 공항 위에 있던 샹들리에가 심하게 흔들리고, 모두가 그 소리에 놀라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직원들이 쏜살같이 공항밖으로 빠져나가는 모습을 목격했다. 나는 티케팅을 하느라고 테이블에 내 몸을 기대고 있었는데 그 돌로 만들어진 튼튼한 테이블을 누가 끝에서부터 바퀴가 달려있어서 쎄게 미는 것으로만 생각했었는데 알고보니 그것은 7이 넘는 지진이었다. 승객들은 큰 지지대를 붙잡고 전화를 하고 기도를 하고 울고 있고 나는 순간 엄마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에 내가 메고 있던 여행용 배게를 엄마에게 머리를 감싸라고 주고 나는 노트북을 머리위로 감쌌다. 그리고 동태를 살폈다. 직원들이 더 혼비백산해서 허둥지둥하고 공항 바닥은 갈라져 위로 올라가지 말라고 펜스를 쳐놓았다. 직원들 중 그나마 당황하지 않고 책임감 있어보이는 높은 직급의 남자에게 짐은 맡기더라도 한국으로 돌아가는 티켓팅은 마저하고 우리 여권도 그 테이블에 있으니 여권이라도 달라고 했더니 남자만 그곳에 들어와서는 우리 물건을 챙겨주었다. 

 ::: 지진이 공항에서 일어나 감사한 멕시코 :::

 오히려 승객들이 빠르게 안정을 찾아갔다. 비행기는 연착없이 뜬다고 했다. 많은 비행기들이 안뜰 줄 알았는데 취소된 비행기도 없었고 10분~20분의 딜레이만 있었다. 그리고 막상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더니 지진이 안에서는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세상 평온한 사람들 천지였다. 분명 회사도 다음날갈지 언제 갈지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지진의 규모에 비해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가는 이 상황들에 헛웃음이 났다. 살다 살다, 지진도 강하게 겪어보고 차라리 감사한 일이다 싶었다. 


 라운지에서 마지막 순서로 걸어둔 샤워를 마치고 개운하게 게이트로 향했다. 몬트레이까지 가는 비지니스는 만석이었고, 저녁 비행이라 틈틈히 주는 음식들 거르지 않고 열심히 먹어두었다. LALA 요거트는 기내에서 먹어본 요거트중에 너무 풍미가 진하고 크리미해서 꼭 한국에서도 맛보고 싶은 요거트였다. 20시간에 가까운 비행에 기체도 너무 심하게 흔들렸지만, 충분히 편안하고 행복한 비행을 마쳤다. 


 2018년 2월은 내게 아주 특별한 달이다. 한국에 있던 날이 10일이 되지 않았고 외국에 나가서도 하루 걸러 하루, 혹은 하루종일 비행기만 탔던데다가 출장에 휴가라는 말도 안되는 스케줄을 나답게 잘 해결하였다.  엄마와 함께 여행을 했던 과거에는 이 좋은 것들을 이 자리에 없는 아빠와 동생이 너무 많이 생각났었는데 이번엔 내 옆에서 이 진귀한 풍경과 경험들을 함께 할 수 있는 엄마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이 더 크게 자리한 여행이었다. 언젠가 엄마에게도 잊지 못할, 후회를 남기지 않는 즐겁고 험난한 남미 여행이 당신의 가슴 속 한켠에 자리하여 웃음지으며 추억할 수 있는 좋은 기억들로 남아있길, 그 추억의 한 페이지를 이번 여행에도 만들어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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