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 등등 이름만 알았지 내용은 잘 몰랐던 미국산 슈퍼히어로들이 이젠 우리의 일상 속에 깊숙이 들어와 버렸다. 티셔츠, 문구류, 심지어 안마의자나 일회용 지퍼백 같은 주방용품에까지 슈퍼히어로가 그려져 있고, 미취학 아동들이 ‘마블’의 캐릭터 이름을 줄줄 꿰고 있을 정도다.
다 영화 덕분에 일어나는 일이지만 그 바탕엔 오랜 기간 이어져 온 ‘슈퍼히어로 코믹스’의 탄탄한 스토리텔링이 단단히 자리하고 있다.
슈퍼히어로물의 역사와 변화를 알아가기 전에, 우리가 익숙하게 부르는 이 ‘슈퍼히어로’란 무엇인가부터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어떤 존재들을 슈퍼히어로라고 할 수 있을까?
옥스퍼드 영영사전에서 ‘superhero’란, ‘특이한 힘이나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이용해 사람들을 돕는 이야기, 영화 등의 인물.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유별나게 용감한 일을 한 실제 인물.’이라고 표현되고 있다.
인터넷 사전인 Dictionary.com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특히 만화나 만화영화에 나오는 인물로서 초인적인 힘을 타고났으며 보통 악이나 범죄와 싸우는 것으로 묘사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네이버 국어사전에선 ‘소설이나 만화, 영화, 드라마 따위에 등장하는, 초인적인 능력을 지니고 사람들을 도와주는 인물.’로 명시되어 있다.
다들 예상했듯이, 대충 ‘초능력으로 사람들을 돕는 선한 인물’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초인적인 힘이 없는 배트맨이나 호크아이 같은 사람들은 슈퍼히어로라고 할 수 있을까?
메리엄-웹스터 사전의 설명이 도움이 될 수 있겠다. ‘비범하거나 초인적인 힘을 가진 허구의 영웅; 또한 유달리 능숙하거나 성공한 사람.’으로 나와 있다. 초인적인 능력은 없지만, 비범하고 능숙한 인물이니 충분히 슈퍼히어로라 불릴 자격이 되는 것 같다. 특히 이런 인물들은 장비나 무기의 도움을 받기도 하므로, 싸움에 있어서만큼은 일반인을 넘어서는 능력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슈퍼히어로라는 명칭이 없던 시절에도 사람들은 슈퍼히어로를 꿈꿔왔다. 고대 신화 속의 헤라클레스나 길가메시 같은 존재나 로빈 후드나 홍길동, 쾌걸 조로 같은 ‘슈퍼 의적’의 경우가 그렇다.
20세기에 들어서 싸구려 펄프 소설을 통해 벅 로저스나 플래시 고든, 섀도우 같은 히어로들이 등장했지만(이들은 나중에 만화와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만화책 형태로 선보인 최초의 슈퍼히어로는 1931년에 일본에서 한 장씩 그림을 넘기며 이야기를 설명하는 그림연극 형식의 황금박쥐(黄金 バット)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이것이 진정 만화책의 범주에 들어가는지가 관건이 아닐까?).
미국에선 신문 만화를 통해 1934년 마술사 차림새의 맨드레이크 더 매지션, 1936년에 코스튬 자경단인 팬텀이 등장했다. 특별해 보이는 코스튬이 없다 뿐이지 시금치를 먹고 힘이 세지는 뽀빠이 역시 슈퍼히어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코믹스라 불리는 미국의 만화에서 슈퍼히어로물이 본격적으로 꽃을 피우게 된 것 1938년에 슈퍼맨이 탄생하면서부터다. 경제대공황으로 인한 장기불황이 강한 남성상을 불러낸 것이다. 골든 에이지라고 불리는 슈퍼히어로 만화의 황금기가 시작된 이래, 슈퍼히어로물은 코믹스 산업을 대표하는 분야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