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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미 Feb 06. 2019

유일


빨간 등대가 있는 바닷길을 간 적이 있지.


바닷길에 빨간 등대가 있는 곳

마치 그곳이 유일한 것인 양

그때의 나는 유일했고.


차디찬 겨울바람마저

우리 안고 있다면,

춥지 않았지.


눈물을 흘려야만 우는 것이 아닌 것처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사랑할 수는 없는 걸까.


그런 것을 들어본 적이 있어?

숲 속의 거대한 나무가 쿵 하고 쓰러지는 소리를.


그런데 그런 것들,

보는 이가 없으면

아무 소리도 나질 않는다는 거야.


보는 이가 없으면 그건 그저 쓰러진 나무일뿐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는 거야.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잖아.

왜 내가 쓰러지는 소리를

남을 통해 내야 하냐고!


화가 나는 거야.


그래서 잔뜩 무거운 짐을 등에 업고

너를 기다렸지.


네가 나 볼 때,

나 그때 쿵 하고 쓰러지고 싶어서.


빨간 등대가 있는 바닷길은 그곳이 유일하지 않았던 것처럼

나 역시

유일하지 못하게 됐다는 걸

알아버렸지, 뭐야.


자, 나 이제 쓰러질게

소리라도 만들어줄래.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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