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등대가 있는 바닷길을 간 적이 있지.
바닷길에 빨간 등대가 있는 곳은
마치 그곳이 유일한 것인 양
그때의 나는 유일했고.
차디찬 겨울바람마저
우리 안고 있다면,
춥지 않았지.
눈물을 흘려야만 우는 것이 아닌 것처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사랑할 수는 없는 걸까.
그런 것을 들어본 적이 있어?
숲 속의 거대한 나무가 쿵 하고 쓰러지는 소리를.
그런데 그런 것들,
보는 이가 없으면
아무 소리도 나질 않는다는 거야.
보는 이가 없으면 그건 그저 쓰러진 나무일뿐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는 거야.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잖아.
왜 내가 쓰러지는 소리를
남을 통해 내야 하냐고!
화가 나는 거야.
그래서 잔뜩 무거운 짐을 등에 업고
너를 기다렸지.
네가 나 볼 때,
나 그때 쿵 하고 쓰러지고 싶어서.
빨간 등대가 있는 바닷길은 그곳이 유일하지 않았던 것처럼
나 역시
유일하지 못하게 됐다는 걸
알아버렸지, 뭐야.
자, 나 이제 쓰러질게
소리라도 만들어줄래.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